초연할 수 있는 마음
- 프시케-
어느 겨울
헐벗은 나무와
매서운 바람을
응시하려면
스스로 벌거벗은 나무가 되어
혹독한 눈 속에 서 있거나
차디찬 바람을
초연히 견뎌야 한다는
Wallace Stevens의 시를 읽으며 문득
내 마음이 여태것 느껴보지 못한 서러움과
슬프고 불행한 느낌을 어제도 맞닥뜨렸었음을 기억해 냈다
스스로 꽤 초연할 수 있으리라던
어떤 사건으로부터의 상황이
나를 이렇게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실망햇다
어떤 세찬 바람에도
맞서지 않고 풀잎처럼 눕겠다던
그 의연함 대신
맞서진 않았지만
온유하게 눕기보다
급하게 올라오는 자격지심으로부터의
화끈거리는 부끄러움을
지혜롭게 넘기지 못했다
오만과 편견으로 나의 인격을
스스로 자신하고 판단했던
이 거대한 실수 앞에
나는 또 한 번 벌거벗겨져
많은 군중 앞에 끌려와 쇠창살을 맞기 직전인
저 성경 속 죄지은 여인과 같은
모습으로 엎드려 있는 느낌이었다
이건 순전한 찔림의 문제인것이다
어떤 문제에 있어
그안에 해당되지 않다는 것에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문제의 중심에 서있지 않더라도
그 언저리에 있는 사람은
그 문제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양심가책이 느껴지거나
본인의 생각에 언저리에 있는 기분이라도
얼굴 화끈 거리는 일이 생긴 것이다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이
하나 둘 눈으로 집어 들었던
그 뾰족한 창들을 보지 않기 위해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왔던
내 모습이 한없이 비겁하고 초라했다
나를 향해 든 창이 아님에도
눈빛으로 다가오는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건 순전히 내 마음속
못나고 어리석은 당당하지 못함 때문일것이다.
그 자리에 나타나
누구든지 그 눈으로 들었던 눈살을
내게 던지려면
자신들의 부끄럽고 죄 없는 자만이
그렇게 할 수 있노라고 외쳐줄
나의 구원의 예수님을 만나기도 전에
서둘러 빠져나오는 내 뒤통수가
얼마나 초라했는지..
아..
나는 얼마나 비겁하고 형편 없는가?
아직도 저 눈 속에서 소리 없이 떨고 있는 나목의 의연함을
살을 에는 그 찬바람을 견딜 초연함을
나는 아직
겨울의 마음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 없단 말인가?
아 슬프고 추운 나의 초라한 인격이여...,
***
눈 사람
-월러스 스티븐스-
서리와 눈 쌓인
소나무의 가지를 응시하려면
겨울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얼음으로 뒤덮인 향나무와
멀리 일월의 햇빛 속에 반짝이는
거친 가문비 나무를 바라보려면
오랫동안 추워야한다
바람 소리와
몇 안 남은 나뭇잎 소리에서
어떤 비참함도 생각하지 않으려면
그 소리는 대지의 소리
같은 헐벗은 장소에서 부는
같은 바람으로 가득한
눈 속에서 귀 기울여 들으며
스스로 무가 된 자는
그곳에 있닌 않은 무와
그곳에 있는 무를 본다
** Wallace Stevenson 의 The Snow Man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상념을 글로 잠시 표현해 보았네요
2014년 9월 29일 월요일 6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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