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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

웃는 가슴(Laughing Heart) - 찰스 부코스키( Charles Bukowski

by 프시케 psyche 2020. 10. 6.

 

 

 

 

 

 

The Laughing Heart

 

by Charles Bukowski

your life is your life
don’t let it be clubbed into dank submission.
be on the watch.
there are ways out.
there is light somewhere.
it may not be much light but
it beats the darkness.
be on the watch.
the gods will offer you chances.
know them.
take them.
you can’t beat death but
you can beat death in life, sometimes.
and the more often you learn to do it,
the more light there will be.
your life is your life.
know it while you have it.
you are marvelous
the gods wait to delight
in you.

-- by Charles Bukowski

웃는 가슴

 

너의 삶은 너의 것

그 삶을 두들겨 맞아

눅눅한 복종 속에 

쳐박혀 힜게 하지마라

잘 지켜보면

빠져나갈 길이 보이고

어딘가에 빛이 있다

대단한 빛은 아닐지라도

그 빛이 어둠을 밝힐 것이다

잘 지켜보라

신들이 너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리고

절대 놓치지 마라

너는 운명대로 살아갈 수도 있지만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법을 

더 자주 배울 수록

더 많은 빛이 보일 것이다

너의 삶은 너의 것이다

살아 있을 때 알아야 한다

 

너는 이미 놀라운 존재이고

신들도 그런 너를 기꺼이

응원할 것이다

-웃는 가슴-

찰스 부코스키

 

*****

 

 

한 편의 시를 좋아하는 것은

시 전문이 마음에 들어서이기도 하지만

그 시의 어느 연, 혹은 한 문장이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가령 파블로 네루다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첫 문장에 반했다.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그렇다, 그 나이쯤이었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시가 나를 찾아온 것은.

어쩌면 네루다도 어느 날 저녁 이 구절이 찾아왔을 것이고,

그 문장을 시 속에 붙잡아 두기 위해

여러 행들을 길게 덧붙였을 것이다.

시인이라면 이것을 안다.

루이스 글릭의 <개양귀비>를

페이스북에 소개한 것도 다음의 두 부분 때문이다.

위대한 것은

생각이 아니다.

느낌이다......

가슴이 아니면

이런 아름다움이 어떻게 가능한가.

꽃은 과거의 상처로 인한 망설임이나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아름다운 색을 지니는 걸까?

우리 또한 생각의 주저함 없이

느낌에 따라 온 존재를 열면

그렇게 아름다운 색이 될까?

『마음챙김의 시』에 실린 시를 독자에게 읽어 주면서

그 시를 신청한 이유를 물으면

거의 예외없이 마음에 와닿은 구절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구절은 내가 그 시를 시집에 넣기로 결정한 이유와

놀랍게도 일치한다.

시에 대한 취향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것이지만

우리가 삶에서 공감하고 동의하는 것은 거의 같다.

학교 졸업 후 취업 준비 중인 독자는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녀는 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혼돈을 사랑하라>

마지막 연을 수첩에 적어 놓았다고 했다.

내가 부탁하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운율에 얹어 그 부분을 읽었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결혼을 앞두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운영하는 매장을 닫을 위기에 처한 남자는 울먹이며

찰스 부코스키가 쓴 <끝까지 가라>의 마지막 연을 읽었다.

끝까지,

끝까지 하라.

너는 마침내 너의 인생에 올라타

완벽한 웃음을 웃게 될 것이니,

그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멋진 싸움이다.

내 상상이었을까 기원이었을까,

마침내 자신의 인생에 올라타 웃음을 웃는 그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렇다, 위대한 것은 생각이 아니라 느낌이고 가슴이 원하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부터 세상이 빛나기 시작한다.

불치병 걸린 남편을 간호하며

어린 늦둥이를 키우는 한 여성은

다니카와 슌타로의 <산다>를 읽어 달라고 했다.

나는 마지막 연을 두 번 반복했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는 날갯짓한다는 것

바다는 아우성친다는 것

달팽이는 기어간다는 것

사람은 사랑한다는 것

당신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시는 광고 전단지의 문구가 아니다.

우리는 삶에서 의미를 품은 문장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힘들어하는 남성은

자넷 랜드의 <위험들> 속 구절을 좋아한다고 했다.

웃는 것은 바보처럼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우는 것은 감상적으로 보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타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일에 휘말리는 위험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나는 저녁이면 종종 나무 꼭대기에 부는 바람을 바라보곤 하는데,

임진강 부근 시골에 들어가 살고 있는

또 다른 남성은 페르난도 페소아의 <사물들의 경이로운 진실>을 신청했다.

그는 마지막 연이 현재 자신이 느끼는 것과 일치한다고 했다.

때로는 바람이 부는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느낀다, 바람 부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태어난 가치가 있구나.

한 여성도 절에서 명상을 마치고 마루 끝에 앉아

대숲에 부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현존이 주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녀 역시 페소아의 그 구절을 좋아했다.

우리는 의무라도 되는 양 시를 읽지는 않는다.

그러나 시 속 한 줄이 우리의 정체성을 자극하고,

마음속 소중한 부분을 울린다.

삶 또한 그렇지 않은가?

우리의 기대와는 다르게

삶은 우리를 모든 부분에서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첫 행부터 마지막 행까지 다 좋은 삶이란 없다.

‘비록 여기 이러한 삶일지라도’

우리가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은

기쁨과 의미를 주는 어느 한 가지,

어느 한 문장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상실한 것들을 되돌려 준다.

삶에서 그 한 가지를 붙잡으면 된다.

『마음챙김의 시』에서

모두가 좋아한 구절은 루이스 글릭의 <눈풀꽃> 마지막 연이다.

기쁨에 모험을 걸자.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