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각의 나비를 읽고
확실히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요즘 생각나는 소설이 하필이면
치매 노인을 다른 박완서 작가님의
"환각의 나비"를 읽었다
단편인데도
읽은 지 시간이 지나서 인지 어느 강렬한 부분만 생각나고
다 생각나지 않는다.
요즘에는 오래전 보다 오래 사는 노인들이 많다 보니
치매에 관한 글들이나 소설들이 많이 나온다
환각의 나비도 역시 치매 노인에 관한
슬프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소설이다
젊어서 혼자가 된 어머니는 세 아이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온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장녀인 영주와 어머니는 서로에 대해 챙겨주고
격려해 주는 조력자이며 유복자인 영탁을 같이
길러낸 친밀하고 각별한 관계다
하숙을 치던 어머니는 늘 "하숙집 딸이 아니면
박사도 할 아이"라는 말로 딸을 겪려 했고
그런 어머니의 바람을 위해
영주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지만 박사학위를 받는다
허 난설헌의 논문을 위해 자료수집도 하고 논문을 위한 증거자료를 위해
연구하며 어머니와 함께 살며 별 걱정 없이 살던 삶도
어머니의 치매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어머니는 자주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집을 나가곤 하는데
번번이 영탁의 집으로 가는 길목인 의왕터널에서
발견되곤 한다.
영주는 어머니가 아들 연탁에서 살기를 원하는 줄 알고
남편과 함께 극진히 모셨음에도 어머니의 마음이
아들네로 향한 것이 아닌가 하여 섭섭해하기도 한다
그 후 아들 영탁네로 어머니를 모셨으나 그곳에서는
당신이 살던 영주네로 간다고
가출을 시도하자 어머니를 방에 가두다시피 방안에 자물쇠를 채우자
어머니의 치매는 급격히 심해진다.
다시 집으로 모셔와 같이 살기 시작하자
어머니의 특기인 반듯하게 빨래 개키는 솜씨, 내복조차도
다림질한 것 같은 반듯한 빨래 개키는 모습을 보이시며
조금씩 호전되는 증세를 보이는 듯했으나
또다시 어머니는 가출을 하고
반년이 넘도록 소식을 모르게 된다.
심심찮게 가출을 감행하는 어머니의 속심정은
옛날에 살던 '종암동 집" 이 그리워서 인 듯하다
몇 번을 집을 나간 어머니를 하루가 지나서 찾기도 하고
하루이틀 지나 찾기도 했지만 이번은 좀 다르다.
백방으로 포스터도 부치고 방송으로도 찾으려 하는가 하면
각 지역의 노인 수용기관도 찾아다녀 보지만 어머니는 어딜 가셨는지 찾을 길이 없다.
그날도 노인 수용기관이 있을 법한 곳을 찾다 포스터를 붙여볼까 하고
우연히 찾아든 한 마을에서 왠지 어떤 힘에 의해 끌린 오래된 옛날집에서
종암동 집 생각은 했지만 닮지 않은 그 "천계사 포개원" 널찍한 마루에서
회색 승복을 입은 어머니와 다른 여인의 뒷모습과 함께
마당에 걸려있는 어머니의 스웨터를 보며 어머니임을 직감한다.
두 여인은 도란도란 더덕껍질을 벗기고 있었음에도
보기에도 화평스러운 분위기가 봄에 피어나는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며 눈에 들어온다
몸집에 비해 큰 승복 때문인지 어머니의 작은 몸은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큰 나비처럼 보인다.
헐렁한 승복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그 고단한 삶의 무게나 질고를 덜어낸
그 가벼운 자유로움이 그 모습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영주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자식 중 누가 어머니를
그렇게 편안하고 자유스럽게 해 드린 적이 있었을지를 생각해 보며
맑고 깨끗한 영혼의 자유스럽고 밝은 천진난만함을 느낀다
포개원은 14살 때 성폭행을 당한 마금이라는 처녀를 보살로 내세워
온 가족이 돈벌이 목적으로 그녀를 이용하는
심신이 지쳐있는 마금이가 있는 절집 혹은 점집이다.
마금이는 받아보지 못했을 진정한 할머니 혹은 어머니 같은 따뜻한 사랑으로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존재로 이곳에 영주의 어머니가 우연히 찾아든 것이다
같이 음식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며 진정한 마음의 평안을 얻고 행복해한다.
그동안 자식들을 키우느라 자신도 돌볼 틈 없이 바쁘게 희생해 온
어머니의 삶을 부정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부정할 만큼 자신을 자각할 틈도 없이 살아온 모진 인생에
허무와 삶의 무상을 느꼈을 것이다.
딸 영주네서도 아들 영탁이 네 서도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닌
그 어떤 불편함.. 혹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은
은연중에 나타난 깔끔한 성격인 어머니의 배려심은 아니었을까?
많은 작품들에서 집을 나가는 치매 노인을 다루지만
이 소설에서는 어머니를 끝내 찾아내는 효심과 사랑.. 따뜻함이 있다.
어머니를 찾은 딸 영주는 어머니를 다시 집으로 모실까
아니면 저 평온해하며 행복해하는 나의 어머니가 아닌
마금이의 다정한 할머니로서 환각의 나비인 상태로 둘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마치 독자들로 하여금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질문을 하듯...
그동안 누군가의 어머니로 할 만큼 한 진정한 어머니로서의 삶보다..
진정으로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영혼에 지친 마금이에게
조건 없이 사랑을 주며 동반자로서 평온한 행복을 찾는 모습이 따뜻하다
치매 소설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가출. 부모 자식 혹은 형제간의 갈등,
거울이라는 도구를 통해 반추해 보는 자기부정,
그러나 끝내 누구의 어머니가 아닌
도움이나 온정이 필요한 누군가의 진정한 어머니로서의
평온하고 따뜻한 자아 찾기가
골고루 나타난 소설이라고 칭찬이 자자했던 소설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감에 남의 일이 아닐 수 도 있다 생각을 하며 읽다 보니..
더 빠져들어 읽었던 것 같다
치매 를 앓는 어머니의 모습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딸 영주의 표현,
저 마지막 장면
회색 승복을 입고 평온해 보이는 "환각의 나비 " 라는 표현은
정말 최고의 표현이 아닌가 싶다
"박완서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여성작가가 쓴 소설은
'여류'라는 수식어에 편협하게 갇혀있었으나
여성의 이야기를 '여류'의 사슬에서 구해냈다고 표현한
김수이 문학평론가의 말에 공감이 가고
"병의 물을 거꾸로 쏟는 듯 유려하고 한 점 막힘이 없는 천의무봉의 작가다"라고
평한 김윤식 평론가님의
말씀에도 전적으로 같은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2023년 1월 12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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