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의 영적 선택
서 론
(엡 1:1)
1. 에베소서에 대한 묘사들
1.1 에베소서는 바울신학의 면류관이요 절정이다.
1.2 에베소서는 기독교의 정제된 진수요, 우리들 기독교 신앙의 가장 권위있고 가장 완벽한 개요다.
1.3 에베소서는 스스로 사용된 언어들로서 표현하기를 "그 모든 것의 영광,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의 신비와 부요함들!"이라고 할 수 있다.
1.4 에베소서는 하늘의 측면에서 위대한 구원과 구속의 파노라마를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다.
1.5 로마서가 복음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면, 에베소서는 복음을 가장 숭엄하고 가장 엄위롭게 표현한 서신이다.
2. 에베소서의 주제 - 하나님
2.1 하나님 아버지 -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요, 하나님의 계시요,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각은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2.2 하나님의 주권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시다. 그런 다음에 우리들 자신들로 내려와야 한다. 이 순서가 뒤바뀌어서는 안된다.
2.3 하나님의 비밀 -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가장 영광스러운 국면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언제나 진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전부를 알고 있다고 하는 순간 자신이 지금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는 그 은혜의 풍성함을 맛보는 생활이다.
2.4 하나님의 은혜 -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과 부요함, 흘러넘치도록 충만한 부요함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3. 에베소서의 주제 - 그리스도
3.1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복음도 구원도 없다. 복음은 특별히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것이다. 모든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행이 되는 것이다.
3.2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의 주제는 이 서신의 실제적인 주제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4. 에베소서의 주제 - 교회
4.1 하나님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하여 그 교회 안에서 가장 명확하게 밝혀지는 것이다.
4.2 그리스도인이 만일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 있는 그의 기업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의 강력의 역사를 따른 믿는 사람들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알기만 한다면" 그것은 우리들을 얼마나 다르게 할 것인가?
4.3 "우리 마음 눈을 밝히소서" 그것이 우리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 서신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이 우리들 앞에 제시되어 있다.
결론 :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세상의 구주시오, 왕중 왕이시요, 만유의 주시요,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의 모든 무릎이 그 앞에 꿇려지는" 분이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풍성함"을 베푸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
(엡 1:1)
서론 : 에베소서는 주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신자들에게 주어진 편지이다. 이 편지는 어느 특정한 사람(위대한 신학자, 학자, 교사)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회의 지체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1. 성도
1.1 성도 - 구별함을 받은 사람이다. 교회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다.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나 조직체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이 세상에서 구별된 백성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1.2 성도 - 거룩한 사람이다. 그는 죄책에서 정결함을 입은 사람이다. 인간을 하나님에서 분리시킨 것이 죄라면 성도는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되기 전에 먼저 그 죄책에서 정결함을 받아야 한다.
1.3 성도 - 외적인 정결함만이 아닌 내적으로 정결한 사람이다. 성도는 마음과 의지와 그의 행동과 그밖에 다른 모든 것을 더럽히는 것으로부터 정결함을 입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주관을 받지 아니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정신이나 사고방식에 좌우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속하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2. 신실한 자들
2.1 신실한 자들 -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선한 사람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진리를 믿는 사람이다. 그들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위에 두고 있는 것이다.
2.2 신실한 자들 -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다. 그들은 믿음을 부여잡고 있으며 그 믿음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이다. 즉 세상의 풍조에 휘말리지 아니하고, 어떤 환경속에서도 굳건히 서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3.1 그는 그리스도께 속하여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생명의 관계로 연결되어져 있는 사람이다.
3.2 그러므로 자신의 연약과 무능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이시요, 우리는 그 생명의 일부이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접붙임바 된 것처럼 그리스도로 능력과 은혜를 공급받는 사람들이다.
결론 : 바울이 말하는 순서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먼저 성도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윌리엄 템플은 말하기를 "거룩하지 않은 신자가 없고, 신자가 아니고서 거룩한 사람이 없는 법이다" 그리고 거룩함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성도의 신실함은 그의 믿음에서 드러나며 그가 신실하게 그리스도안에 있을 때 그는 힘있는 크리스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크리스챤이 될 것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비록 소수였지만 그들이 영향력있는 크리스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신분의식, 자아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시급히 요청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다움이다.
은혜, 평강, 영광
(엡 1:2)
서론 :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고 있어야 할 유익을 말해주고 있다. 사도는 친숙한 인사말을 사용하여 새로운 기독교 체계 속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1. 은혜와 평강의 정의
1.1 은혜는 우리 믿음의 시작이요 평강은 우리 믿음의 마지막이다. 은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의 원천이요, 샘이요, 근원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강을 산출한다.
1.2 은혜 - 은혜는 본질적으로 공로없이 호의의 베품을 받는 것이다. 그것은 아래로만 내려가는 내리 사랑이라는 말로 부를 수 있다.
1.3 평강 - 평강은 단순히 전쟁을 그치고 안식과 평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강은 분리가 있은 뒤에 오는 연합을 의미한다. 즉 싸웠던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고 악수하고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2. 은혜와 평강을 필요로 하는 이유
2.1 사람은 본질상,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던 때부터 하나님을 미워하였다.
2.2 인간이 하나님과 이런 관계에 처하여 있기 때문에 그는 역시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
2.3 그러나 비록 인간이 죄로 타락하였지만, 곤고한 상태에 빠져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들의 적대적인 원수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들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주셨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 화평을 이루신 것이다(롬5:1)
2.4 이러한 은혜의 결과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속에 화평을 준다. 더욱이 이 평강을 유지시켜 주시고 지켜 주신다.
3. 어떻게 이 모든 것이 일어났는가?
3.1 우리 아버지 -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리를 벌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율법 제정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3.2 주 예수 그리스도 - 은혜와 평강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함께 나오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부터 인간에게 오는 축복은 없다.
3.3 주 - 주라고 번역된 말은 유대인들이 구약 시대에서는 "하나님" 이라는 말로 사용되던 말이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되게 세워놓았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영원한 분이다.
3.4 예수 - 그는 역시 참으로 한 사람이다. 성육신의 기이한 교리가 여기 두 번째 구절에 나온다.
3.5 그리스도 - 주 예수 그리스도 그는 구주요, 기름부음을 받은 자요, 메시야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은 분이다.
결론 : 우리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물이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존귀한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 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우리 아버지의 존전에서 영원토록 거하는 것이다. "은혜" 는 그러한 것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평강으로 인도하며, 아들되는 자격을 가져다주며,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영원한 언약
(엡 1:3)
서론 : 사도바울의 문체상의 특징은 전체 복음을 한 구절이나 한 절 안에 진술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1. 지식의 부족
1.1 3절은 에베소서 전체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서신의 주제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일들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1.2 그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어떠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들에게 은혜로 제공된 이 복락들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인식하며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1.3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고통거리는 이해와 지식의 부족이다. 지식이 부족한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주요한 고통거리이다(호4:6). 사도에 따르면 우리들의 긴박한 필요는 "우리들의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다"
2. 찬송하게 하는 진리
2.1 찬양과 감사는 언제나 그리스도인의 삶의 위대한 특징이다. 초대 교인들이 당한 핍박에도 불구하고,그들이 당한 모든 어려움과 역경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찬양을 드리고 감사하는 정신으로 특징을 이루는 사람들이었다.
2.2 우리들의 살아가는 삶에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일이 얼마나 뛰어난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보다 우리들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의 진상을 시험하는 참된 시금석은 없다.
2.3 세상은 매우 비참하여 있고, 매우 불행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찬양과 감사와 만족하는 마음은 그리스도인을 돋보이게 하고 그가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2.4 찬양은 실로 모든 공적 예배 행위들 중에서 중요한 순서이다. 이 찬양과 찬미와 예배가 복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것을 주목하라.
3. 찬양받으실 하나님
3.1 구원의 본질을 참으로 인식하면 찬양을 할 수밖에 없다.
3.2 하나님은 하나님 다우시기 때문에 찬양받으셔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축복하셨으니 하나님은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3.3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신 방식 때문에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이 진리를 살펴야 하고 우리의 영혼을 그 진리와 맞부닥치게 하여 그 영혼들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4. 영원한 언약
4.1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사이에 이루어졌다.
4.2 삼위 하나님께서는 단지 사람을 창조하시는 것만이 아니라, 그 회의는 사람을 구원하는 문제까지도 생각하신 것이다.
4.3 경륜적 삼위일체 - 삼위일체 하나님의 각 위들은 그 일을 분담한 것이다. 아버지는 그것을 계획하셨고(4-6절) 아들은 그것을 실행에 옮기시고(7-12절) 성령께서는 그것을 적용하시는 일을 하시기로(13-14절) 정하신 것이다.
결론 : 여러분은 그가 여러분을 위하여 하신 일을 인식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예배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우리는 그 언약에 들어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 언약의 귀추들 중 어떤 것들을 숙고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엡 1:3)
서론 : 복을 받는 방식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더욱 예배하면 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더욱 더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실제적인 사람은 축복을 향하여 돌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축복의 원천을 생각하고 그 원천을 접하는 사람입니다.
1. 그리스도 안에서
1.1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를 떠난다면, 여러분은 결코 어떤 복도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1.2 보통 은혜 - 인류 전체가 누리고 있는 보통 일반적이고 공통적인 복락이다.
1.3 특별 은혜 - 오직 그리스도인들만이 누릴 수 있는 복락을 말한다.
1.4 그리스도는 모든 복락의 유일무이한 중보자이시다. 복락들이 오는 유일한 통로요 독점적인 통로이다(행4:12, 딤전2:5, 골1:19, 엡1:22-23, 골2:3,9)
2. 신령한
2.1 이 복락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다.
2.2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적용시키는 특별한 일은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2.3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삶의 충만케 하시고 그로 하여금 복음서들에 묘사된 대로의 삶을 살아가도록 가능케 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그러한 삶이 가능하도록 한다(요일4:17, 엡2:1)
2.4 성령께서는 우리를 점차적으로 인도하여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위한 완전한 일을 묵상하게 한다(엡2:8, 고전2:14). 그리하여 우리는 점차적으로 그리스도의 충만함을 받게 되고 은혜 위에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하게 된다.
3. 하늘에 속한
3.1 우리들이 누리는 복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구약의 복락은 물리적이고 잠시적인 것이었다. 그들의 복은 세상적인 평가로 그것을 측정하였다. 그러나 신약의 복락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에 속한 것들이다.
3.2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요 행인에 불과하며(벧전2:11) 실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3.3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이 세상의 정신과 정신구조를 따라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은 불신자와는 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는 세상을 그의 아버지의 세상으로 안다(고후4:17, 5:1)
4. 모든
4.1 우리가 이 세상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복락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모든 복락들이 에베소서에서 바울에 의하여 매우 엄청난 방식으로 묘사한다.
4.2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를 양자로 받아드릴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의 권속이 되게 하였다(13,19절, 요17:3). 나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흠없는 의의 두루마기를 입게 하신다.
4.3 동시에 그는 우리에게 죄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엡6:13). 그리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결론 : 이미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러한 것들을 누리고 처음 열매에 속한 것을 맛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것들을누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들은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그리하여 급기야는 그 없으신 것을 구속하시게 될 복된 날이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날에 그 영광의 존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엡 1:3)
서론 : 사도는 이 구절에서 우리들을 하늘로 올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기독교의 입장을 가장 위대하고 가장 엄위롭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두 사람
1.1 첫째 하늘 - 구름이 떠 있는 대기권, 둘째 하늘 - 별들이 빛나는 은하계의 하늘
1.2 셋째 하늘 - 하나님께서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곳이다. 그곳은 역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몸을 입고 거하시는 곳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온전함을 입은 사람들의 영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1.3 사도의 가르침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가 하늘에 있듯이 우리도 하늘에 속한 것이다.
1.4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이끌어내시고 살리시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여 주셨듯이 우리들이 중생을 할 때 이러한 것에 상응하는 변화가 일어난다.
1.5 그리스도인은 필연적으로 두 사람(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다.
1.6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인물이다.
1.7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영혼 안에서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두 세상
2.1 그리스도인은 동시에 두 나라의 시민이다. 그리스도인은 "어두움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워진 사람이다.
2.2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이 세상의 시민이며 세속적인 영역에 속하여 있다. 동시에 그는 이 세상이 하나님의 세상인 것을 안다. 하나님이 자기를 이 세상에 두신 목적과 계획을 안다.
2.3 그리스도인은 이땅의 조국이 요구하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땅의 법률을 범하고 싶지 않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영원하고 죽지 아니하고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다른 영역에 거하는 주님이신 그 왕을 거스리기는 더 싫어하는 것이다.
2.4 영으로 나는 이 순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이 아직 지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3. 두 사고방식
3.1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전혀 다른 방식이다.
3.2 그리스도인이 교회를 바라볼 때에도 이러한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보아야 한다.
3.3 동시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바라보시며 저들의 악을 막으시기 위하여 치정자를 세우시고 기관을 만드시는 것을 본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죄를 제어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는 못한다.
3.4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의 위대한 구원을 이루시고 구원받은 백성들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이다. 진정한 문제의 해결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결론 :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낙관주의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여러분은 이기시고, 이길 수 있는 분이 그리스도 밖에는 없음을 압니다. 여러분은 "하늘에 속하여" 있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있는 본성들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이 그 두 영역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은 전쟁과 평화와 세상의 고통들에 대하여 이 새로운 영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 모든 것을 하늘의 전망대에서 하나님의 전망에서, 하늘 보좌 우편에 함께 앉아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그 모든 것을보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찬미할지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엡 1:4)
서론 : 사도는 본문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우리들에게 어떤 방식을 통하여 오게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든 지극히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들이 관계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하셨다.
1.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적 역할
1.1 사도는 우리가 구원받게 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이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때문이 아니라 사도는 창세 전으로 돌아가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행해진 일을 맨먼저 말한다.
1.2 성경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한 기록이요 계시오 그것을 설명한 것이다. 성경은 죄에 빠진 인간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운 목적을 제시하는 것이다.
1.3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러한 신령한 복락들을 누리고 있는 것은 그들이 그러한 복락들을 누리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선택
2.1 우리들이 하나님 자신의 선하신 기쁘심에 의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
2.2 우리들의 됨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원수들이었고 우리들이 멀리 있던 자이고 하나님을 미워하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
2.3 이 문제는 논쟁하는 정신으로나 교의적인 태도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정신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또한 체험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좋은 태도이다.
3. 선택교리를 대하는 자세
3.1 본문의 선택교리는 하나의 진술이지 하나의 논증이 아니다.
3.2 성경은 이러한 교리들에 대하여 우리들과 논증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롬9:19)라고 말할 뿐이다.
3.3 성경은 이러한 문제에 관한 우리들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좁은 소견으로 이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믿고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이다.
3.4 우리는 오직 한가지 이유 즉 성령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신 사실 때문에 믿는 것이다. 이 세상의 신은 사람들을 어둡게 하여 그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지만 오직 참 유일하신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을 비추사 믿게 하시는 것이다.
3.5 본질상 사람들은 이 진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들은 이 진리가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 진리를 무시하거나 곡해하여 해석하고자 한다.
3.6 이 진리는 복음전도와 하등 관계가 없다. 하나님은 선택(하나님의 주권의 문제)과 별개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우리의 할 일) 하라고 명하신다.
3.7 성경의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 우리는 앞서 있는 권위자들의 글을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3.7.1 선택교리를 믿은 사람들 - 어거스틴, 토마스 아퀴나스, 마틴 루터, 죤 칼빈, 쯔빙글리, 존 낙스, 영국 교회의 39개조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존 오웬, 토마스 굳윈, 죠지 휫필드, 요나단 에드워드, 찰스 스펄젼
3.7.2 선택교리를 믿지 않는 사람들 - 존 웨슬리, 알미니안, 자유주의, 현대주의
3.8 우리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느냐가 우리의 구원문제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결론 : 나의 안전감과 나의 기쁨은 이 교리를 믿느냐에 달려 있다. 비록 내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나의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나의 안전감을, 나의 구원의 즐거움의 체험과 나의 확신감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영광스러운 진리를 무릎을 꿇고 대하라. 그것을 성경 전체의 흐름으로 여기라.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엡 1:4)
서론 : 사도는 단순히 우리들이 선택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함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1. 그리스도안에서
1.1 우리들의 지위는 우리들이 행한 것에 의하여 결정되지 아니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전 인간 중에서 한 백성들을 자신을 위하여 선택하셨다. 그러한 다음에 선택하신 이 사람들을 아들에게 주셨다. 아들이 그들을 구원하고, 하나님과의 화해를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행하게 하기 위하여 아들에게 그 백성을 맡기셨다.
1.2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목적은 사람의 죄와 타락의 모든 결과들과 효과들을 제거시켜 도말하시고 그것을 완전히 교정시키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선택의 목적
2.1 거룩하고 흠이 없이 - 이 두 국면은 서로 잘맞는 짝이며 둘 다 성화를 가리키고 있다.
2.1.1 거룩이라고 하는 것은 내적인 성결함의 상태를 지시하는 말이다.
2.1.2 흠이 없고, 또는 책망할 것이 없는 것은 소극적인 것이다. 그것은 오점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2 하나님 앞에서 - 이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3 사랑안에서 - 사랑의 진수는 거룩이라고 할 수 있다(롬13:10). 우리는 거룩이라는 것을 사랑의 차원에서만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2.4 우리가 생각하기를 선택의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하지만 바울은 지적하기를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라는 말로 그 목적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 뜻은 절대적인 완전함, 거룩함이다.
3. 구원
3.1 구원은 행복의 문제라든지 도덕성의 문제라든지, 율법의 문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3.2 구원이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우리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므로, 구원은 필연적으로 언제나 처음부터 끝까지 거룩이라는 차원에서 생각되어야 한다. 거룩은 구원의 시작이자 끝이다.
3.3 만일 거룩하지 아니하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복음 전도의 전체적인 목적은 일차적으로 사람들에게 죄가 그들에게 어떤 일을 했으며 어째서 그들이 현재 이러한 상태에 있는가를 말하여 주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 거룩의 관계로 나가도록 초청하는 것이다.
결론 : 우리들이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며 하나님을 닮아서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하는 이 보배로운 진리, 이 위대한 교리만큼 거룩을 촉진시키는 것이 없는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빛 가운데서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아담 보다 더 높이
(엡 1:5,6)
서론 : 우리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받아들여주시는 수양과 그것의 결과로 인하여 우리들에게 오는 모든 특권들을 알았다.
1. 하나님의 자녀
1.1 모든 사람들은 형제들이요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
1.2 성경은 분명 인류를 두 부류로 구분하여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과 속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아버지이시다. 그는 모든 사람을 지으신 분이시다. 그러나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이라는 특정한 백성들을 향하여 나의 아들이라고(출4:22) 거듭 말씀하신다. 그리고 사도가 말한 바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요 마귀의 자녀(요8:42,44)이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고 말할 자격이 없는 존재였다.
1.3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된다(요1:12)
1.4 그리하여 사도는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다.
2.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2.1 사도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밖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거듭하여 "그 안에서, 그로 말미암아, 그를 인하여" 라는 말을 쓰고 있다.
2.2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14:6)
2.3 그러나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동일한 방식의 하나님의 아들은 아니다. 우리는 양자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우리의 아들됨은 파생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됨이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2.4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본체"시오 "바로 하나님 자체"이시다. 그는 본질적으로 우리들과는 다른 분이다. 그러함에도 우리들은 그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2.5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그러나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친다. 자녀와 아들을 구분하여 어떤 특정한 사람만 하나님의 아들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2.6 사도는 이 편지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썼다. 또한 성경은 자녀들과 아들들이라는 말을 차별없이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롬8:15,16, 갈3:26, 4:7). 더욱이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한번도 아들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자녀들이라는 말만 사용하였다.
3. 아담 보다 더 높이
3.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은 단순히 타락이나 죄의 영향을 없애 버리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3.2 물론 아담은 만물의 영장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아 하나님과 교제하였다. 그는 무죄한 상태에서 창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가 아닌 것이다.
3.3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아담과 다른 위치에 있는 것이다(고전15:47).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결단코 타락하여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요10:28,29, 롬5:20)
3.4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이 잃어 버렸던 복락들이 우리들에게 회복되어서 되돌려졌을 뿐 아니라 우리는 그보다 더 한 것을 받은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누리게 된 이 새로운 관계에서 아담보다 더 높은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결론 : 여러분이 여러분의 과거의 생활에 심각하게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이제 하나의 믿는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요, 하나님의 양자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제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제는 새로운 지위를 얻게 되엇다. 타락전 아담의 지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
(엡 1:6)
서론 : 구원은 인간의 바램이나 요청에 의하여 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안에서 우리들을 통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다.
1. 구원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다.
1.1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진수적인 본질이다(히1:3). 하나님을 묘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이 있다면 그것은 곧 영광이다(요일1:5).
1.2 구약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존전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은 영광임을 알 수 있다(왕상8장)
1.3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게서 인간을 구원하시는데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다루신다는 것을 언급할 때에 나온다(출애굽시 구름기둥과 불기둥)
1.4 베들레헴에 아기 예수가 탄생할 때 천사들의 찬송은 하나님께 영광이 우선적으로 불려졌다.
1.5 죄의 진수는 우리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다. 구원의 진수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구원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들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사역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2.1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 속에 나타난다. 그것은 자연 속에서도 나타난다(시19:1, 8편)
2.2 하나님의 영광은 역사를 통하여도 나타난다.
2.3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크게 보여주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들의 구속을 통해서이다.
2.4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의에서 나타난다.
3. 우리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3.1 하나님의 영광은 최종적으로 우리들 안에서 우리들로 말미암아 나타내진다(엡3:10, 요17:10, 마5:16).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서 "하나님은 얼마나 놀라우신가" 하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살고 행동해야 한다.
3.2 우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들 안에 들어오시는 것이다(골1:27).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육신적으로 마리아에게 들어가셨듯이 그는 영적으로 그의 자녀들인 우리 모든 사람들에게 들어오시는 것이다(눅1:35). 우리들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처럼 우리 안에서 태어나시어 우리는 "크게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3.3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의 아들로 받아들이시고, 그뿐 아니라 바로 그의 아들되신 분이 우리 안에 거하시게 되어서, 우리는 "성령의 거하는 전이" 될 것을 작정하신 것이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개념이다.
결론 : 여러분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십니까? 그렇지 아니하면 여러분 자신을 위하여 조금을 남겨 놓습니까? 여러분을 구원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믿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구속
(엡 1:7)
서론 : 본문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설명하고 있다. 원수 마귀는 이 핵심 진리를 혼란시키려고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핵심 진리를 자세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원은 이미 살펴본대로 성삼위 하나님의 합작품이다. 3-6절은 성부 하나님의 사역을 7-12절은 성자 예수님의 사역을 13-14절은 성령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설명하고 있다.
1. 구속받아야 하는 이유
1.1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다.
1.2 하나님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59:1,2)
1.3 사도는 바로 이 죄의 장애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처리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2. 구속에 대한 부정적인 진술들
2.1 우리는 우리 자신을 스스로 그리스도인 되게 할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인 되려고 노력중이다는 말은 자신이 지금 죄악중에 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그 길에 있으면서 온갖 노력 - 금식, 기도, 공로 - 은 헛수고에 불과하다. 하루속히 그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2.2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시고 가르치셔서 구원의 길을 제시하려고 오셨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가르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2.3 주님이 오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할 의향과 사랑이 충만함을 가르쳐주기 위해 오셨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복음은 용서할 의향이 있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갈보리 십자가에서 용서하셨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2.4 그리스도는 단순히 구속을 선포하시는 분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이 구속 자체이시다. 구원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
3. 구속
3.1 구속이란 말은 우리가 값주고 구원함을 받았다는 말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강조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6:19,20)하였다.
3.2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또 다른 문제는 그 값이다. 성경은 그 값을 그의 피라고 하였다. 단순히 예수님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은 강조적으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3.3 우리는 그의 피라는 말을 통해서 구약의 희생제사를 생각나게 한다. 구약 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으면 희생제물에게 안수함으로 그 죄책을 전가하여 희생하였다.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제물이 그것을 대신하여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렇게 자신을 희생제물로 만드시고 하나님의 지성소에 그 피를 뿌린 것이다.
결론 : 예수님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필요한 값을 지불하여 우리를 사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발 아래 엎드려서 그를 경배하고 그를 찬미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우리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엡 1:7)
서론 : 구속이란 단순히 죄사함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구원의 전 영역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구속의 궁극적인 목적인 우리의 몸이 영화롭게되는 것이지만 그것은 첫 번째로 죄사함으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1. 죄사함에 대한 오해
1.1 보통 사람들은 죄의 문제를 언급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죄 용서함이나 죄인이란 말을 싫어하여 그것들을 언급하기 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1.2 저들은 단지 사랑과 행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죄 용서함 받지 않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죄에는 반드시 징벌이 따르고 나아가 그 징벌은 심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1.3 하나님을 그저 마음 좋은 아버지로 생각하여서 아들아 모든 것이 잘 되었다. 내가 무조건 용서하마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전체 모습이 아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죄에 대하여 징계를 가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1.4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기 전에는 복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저들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2. 죄사함의 방편 -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2.1 사람들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왜 죄를 용서하신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텐데 하지 않나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2.2 하나님은 빛이시라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죄는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2.3 하나님의 죄사하심의 방식은 매우 철저하다. 하나님은 이 죄를 그냥 없던 걸로 하자 묵과하지 아니하시고 그 값을 치루시는데 그것은 바로 독생자의 피흘리심으로 말미암는다.
2.4 우리는 보통 죄를 감추거나 없던걸로 잊어 버리므로서 행복해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구원의 길이 되지 못하며 행복의 길이되지 못한다. 우리는 죄 용서받기 전에 죄가 얼마나 흉악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죄는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여서 하나님께 용서받지 않고서는 반드시 멸망하고 형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3. 죄사함 - 하나님의 은총
3.1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얻어진 죄사함은 얼마나 철저한지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용서와 은총을 입게 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니(시103:12)
3.2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준다고 하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시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31:34, 히10:17)
3.3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가? 그것은 죄용서함을 받는다는 말이요 그것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말이요 그는 구원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결론 :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지옥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를 흘려 우리를 구속하여 주셨다. 그의 보혈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속함 곧 죄사함을 받는 길이 열려진 것이다.
그 은혜의 풍성함
(엡 1:7)
서론 : 성경의 구절구절은 마치 보석들을 살펴보는 것과 같다.그것들 하나 하나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르는 일이다.
1. 하나님의 은혜
1.1 사도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어찌 사도가 될 수 있겠는가 하는 개인적이고 체험적인 측면에서 은혜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그는 그 받은 은혜를 남들에게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2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알고 있는지, 체험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자주 슬픔과 분노와 고통 속에 빠져 있다. 우리의 입에 기쁨과 찬미와 감사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상고하고 그것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2. 하나님의 은혜의 성격
2.1 길거리 걸인이 손을 벌릴 때 기꺼이 돈을 꺼내어 구제를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요구하기 전에 그러한 은혜를 베푸셨다.
2.2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분량이나 크기를 측량, 측정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측량이 불가능하다. 수세기에 걸쳐서 수백 수천만의 성도들이 이 은혜의 샘에서 마셨지만 이 샘은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였다.
3.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
3.1 값없이 죄 용서하여 주시는 것 -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55:1)
3.2 하나님은 죄를 사하여 주시되 완전히 사하여 주시는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조건이 달려 있지 않다.
3.3 하나님의 은혜는 죄 용서하시고 다시는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와 함께 전보다 더 가까운 관계로 화목한 관계로 회복하신다.
3.4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고 기꺼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하고 엎드리는 것을 허락하신다.
3.5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사단 마귀의 공격에서 보호하신다.
결론 : 우리들이 회개하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우리는 종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양자로 받아들여진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과 사랑이 우리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모든 것을 누려야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 뜻의 비밀
(엡 1:7-8)
서론 : 하나님은 절대적인 지혜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어떤 일이든지 지혜로 하신다.
1. 비밀을 알리심
1.1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계획하시고 목적하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도록 나타내셨다.
1.2 사람이 어떻게 하여서 이 구원의 비밀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비밀
2.1 비밀은 바울 서신에서 매우 중요한 용어이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마13:11). 천국에 대한 가르침은 하나의 비밀이다. 이것은 제자들에게만 알도록 허락되었다.
2.2 비밀이라고 할 때 그것은 희미하거나 모호하거나 분명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비밀은 인간의 생각이나 이지로는 알 수 없다는 면에서 비밀이다.
2.3 이 비밀은 불신자에게는 이해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구원의 진리는 그리스도인에게 더 이상 비밀이 아니고 너무나 분명하게 알려진 진리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
2.4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이해하고 싶으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세상에 속한 지혜와 인간의 힘과 기능들에 의존하려는 마음은 버려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해하고 파악할 능력을 주셨다.
3. 총명
3.1 총명은 우리가 생각하고 사용하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베드로가 십자가행을 막자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깨닫는 총명이 없다는 말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롬8:5)
3.2 그러므로 이 말은 통찰력, 영적 분별력, 영의 세계를 이해하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3.3 성령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바로 성경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다. 성령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
결론 :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이지의 힘이 아니다. 구원은 영적인 것이며 전부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진리를 주실 뿐 아니라 지혜와 총명도 주신다. 우리는 다같이동일한 수준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못하고 주 예수 자신 이외에는 어떤 이도 자랑할 수 없다.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됨
(엡 1:10)
서론 : 이 구절은 에베소서의 실제적 주요 목적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우리는 국가들이 나뉘고 분쟁하며 사회와 가정이 사람들의 생각이 나뉘고 분쟁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갈등하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우리 앞에 미래가 어떤 양상으로 변할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1. 경륜, 때가 찬
1.1 경륜 - 하나님의 계확과 체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위대한 계획을 아는 지식과 통찰력을 우리에게 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그 계획대로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
1.2 때가 찬 -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 실행에 옮겨질 때를 말한다. 즉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던 이 위대한 목적이 이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때가 차매 오셨고, 말세의 모든 성도를 위하여 이 성경이 기록되어졌다.
2. 다시, 만물, 다
2.1 영원한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다시 통일 되는 것이다.
2.2 그것은 단순히 하나되게 하고 모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시 모으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재 통일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전에 완전한 상태로 다시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이 세상은 통일과 죄로 말미암아 조화가 완전히 깨어졌다. 그러므로 피조물들은 허무한데 굴복하며 구원의 날이 올 것을 기다리고 있다.
2.3 예수님은 모든 만물을 모으시고 그것을 다스리신다. 이제 중간에 막힌 담이 헐어졌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다.
3. 교훈
3.1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인류를 향한 계획을 다시 완성시키는 것이다.
3.2 이 계획은 구속받은 무리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이지 불신자들을 통하여 이루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만물의 영장으로 다시 높여질 것이며 만물은 우리 앞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뛰노는 것이 이루어질 것이다(사11:6-9)
3.3 그리스도는 만물의 머리가 되실 것이다. 모든 것은 다시 그 안에서 재 통일 될 것이다. 그날의 기이함은 아무도 표현할 수 없다.
결론 : 하나님의 계획은 시행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그 안에 다 들어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원래 사람이 갖추었던 바의 모습을 되찾고 고양될 것이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이 될 것이다.
우리가 ... 너희도
(엡 1:11-14)
서론 : 본문에서 우리는 유대인을 가리키고 너희는 이방인을 가리킨다.그런데 이 두 부류의 사람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당시 유대인의 사고방식으로 볼 때에는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본문은 어떻게 해서 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1. 하나님의 백성들
1.1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나라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는 이제까지와는 전혀 새로운 길이요 신약의 위대한 주제이다.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려졌다. 다른 모든 것은 폐하여졌다.
1.2 이렇게 하나되는 역사는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되기까지 사람들 사이에 진정한 하나됨을 있을 수 없다.
2. 화해
2.1 본문의 요점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시킨 것이다. 서로가 원수 사이가, 비웃던 사이가, 도저히 하나될 수 없는 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자랑하였으며 헬라인들은 학식과 지적인 능력을 자랑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서로 충돌하고 싸웠던 것이다. 둘 사이의 분쟁을 해결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하지만 저들은 오히려 싸움만 붙일 뿐이다.
2.2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적인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은 바 되어야 한다. 죽은 사람은 그 어떤 의미있는 행동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가 되고 새로운 관계를 이루고 있을 때에만 그 기독교의 교훈은 역사하는 것이다.
2.3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만든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저들은 모두 각자 스스로 자랑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똑같은 죄인에 불과하다. 유대인이 자랑하는 율법이나 헬라인이 자랑하는 학식은 결코 인류를 하나되게하지 못한다. 화해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을 뿐이다.
3. 같은 후사
3.1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분깃을 얻었다. 몫을 싸우지 않고 함께 나눈다는 것은 마음이 서로 맞는다는 말이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고 갈라지는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가 다 한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이름이 드러나고 나타내서 자랑하고픈 마음은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만이 드러나기를 간절히 원할 뿐이다.
3.2 세상 사람들은 돈 때문에 싸우고, 지위 때문에, 인기 때문에 싸운다. 세상 사람들은 바로 세상의 것만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3.2 더욱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며 함께 왕노릇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마음의 원대로
(엡 1:11-14)
서론 : 교회는 새 예루살렘이요 영적인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다.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로 연합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되어지는가?
1. 성경해석법
1.1 우리가 성경을 접근할 때 먼저 모든 선입견을 배제해야 한다.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가지고 그것을 성경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성경을 처음부터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1.2 우리 자신과 우리 마음을 전적으로 성경에 복종시켜야 한다. 세상은 항상 학문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이해가 되어야 하고 납득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마음을 성경에 복종하는 일이 더 중요함을 강조한다.
2. 우리의 구원관
2.1 내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할 때 그리스도인됨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구원관은 인간 중심이 아닌 하나님 영광 중심이어야 한다.
2.2 우리의 구원은 결코 우리에게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의 특별한 성격이나 행위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때문이다 - 그 마음의 원대로
2.3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예지예정론이 아니다. 구원의 계획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밖에서 들어온 것은 하나도 없다. 온전히 다 하나님 안에서 기인된 것이다.
3. 예정
3.1 예정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미리 정하셨다는 뜻이다. 그 마음의 원대로 하나님은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 안에서 우리를 바라보셨다. 우리는 창세전에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었다.
3.2 그리고 그 계획을 온 천하에 계시로 알리시고 기록케하셨다가 때가 차매 직접 독생자 예수님께서 그 계획을 이루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
3.3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위대한 계획과 목적을 수행하고 계신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나니(빌2:13)
결론 :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 안에 특별하고 예외적인 것이 있어서가 아니다. 본질상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달라서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야곱이 에서보다 나을 게 하나도 없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그 정반대일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 안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하심의 열매이다.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른 하나님의 계획의 열매이다. 그가 미리 정하신 것은 스스로 이행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듣고, 믿었고, 바랐었다.
(엡 1:11-14)
서론 : 우리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한 방편을 생각해 볼 것이다.
1.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1.1 그것은 단순히 어떤 체험을 하거나 전에 가지지 못하였던 어떤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것만으로는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 위에 기초를 둔 사람이다.
1.2 기독인은 선한 삶과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이단은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고 만족을 준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에서 떠났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1.3 바리새인들처럼 그렇게 종교적이라 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서 떠나면 그도 역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2. 진리의 말씀
2.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그리고 그 죄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지 그것을 혐오하는 마음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2.2 우리가 행복과 어떤 느낌을 추구하기 전에 자신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인지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2.3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용서하시고 은사를 주신다. 그리하여 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하신다.
3. 성령과 말씀
3.1 진리의 말씀이 증거될 때 어떤 사람은 믿고 기뻐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맹렬하게 핍박한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셔야 함을 알게 된다. 같은 말씀이 증거되었으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3.2 말씀을 적용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될 수 없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마음 가운데 역사하셔야 한다. 믿음은 하나의 선물이다. 이제까지 아무런 감동이 되지 못하는 그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4. 믿고, 듣고, 바랐어다.
4.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계적으로 취급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로 설득하시고 그 진리를 따라오도록 하신다. 이 진리는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니다. 매력적이고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이다.
4.2 그러므로 말씀이 전파될 때 우리는 그것을 듣는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믿게 된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뻐하며 소망을 가지게 된다.
4.3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중심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과거를 돌아볼 때에도 주님 때문에 마음에 평안이 넘쳐나고 현재를 바라보아도 주님과 더불어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고 미래를 바라보아도 주님과 더불어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된다. 어떤 유혹과 시험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의 앞길은 죽음도 가로막지 못한다.
결론 : 여러분의 모든 소망과 확신의 기초가 그리스도입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를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만을 굳게 의지한다면 여러분은 복된 자가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인침
(엡 1:13)
서론 : 성령이 아니고서는 구속받을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속받고 믿음을 가진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성령의 인침을 통한 부흥과 각성이 또한 필요하다.
1. 인침의 일반적 의미
1.1 인은 귄위를 상징하고 나타낸다. 또한 그것이 진품임을 보증한다.
1.2 인침은 소유를 표시한다. 짐승을 산 사람이 자기 표나 도장을 짐승들에게 쳐두어 그것들이 자기에게 속한 것임을 나타낸다.
1.3 인침은 안전보장을 위해 사용된다. 우편물 위에 인을 쳐서 누구도 개봉하지 못하도록 한다.
2. 인침의 성경적 용례
2.1 요3:33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 이는 복음을 믿고 받아 들일 때 복음이 하나님의 진리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진리임을 동조하며 인정한다는 뜻이다.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복음에 여러분의 인을 치는 것이다.
2.2 요6:27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 주님은 하나님에 의해서 그의 진정성을 보증받은 분이라는 뜻이다.
3. 인칠 때
3.1 "그 안에서 또한 너희가 믿은 다음에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느니라"(흠정역)
3.2 토마스 굳윈, 존 오웬, 찰스 시므온,찰스 하지 등은 성령의 인침과 성령의 감동으로 믿는다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님을 주장한다.
3.3 요14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과 엄격히 구분됨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16장에 나아가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저들은 주님이 떠나심을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성령님이 오심을 뜻하기 때문이다.
3.4 행1장에서 주님은 저들에게 성령을 기다리라고 명하셨다.
3.5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으나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리라"(행8:16)
3.6 행 9장에 사도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믿게 되지만 훗날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성령충만함을 받게 된다.
3.7 "너희가 믿을 때에(믿은 후에 - 원문) 성령을 받았느나?(행19:2)
결론 : 인침이 믿는 일 바로 뒤에 즉각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그것이 반드시 긴 간격을 두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매우 짧은 기간일 수도 있다. 그 기간이 짧든 길든 거기에는 언제나 간격이 있다. 이것은 인침을 받는 자들만이 아는 일이다. 인침은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증시키고 그리스도와 우리를 확고한 믿음으로 연합시킨다.
인침의 본질
(엡 1:13)
서론 : 부흥은 교회 안에서 시작되고 밖으로 퍼져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때 세상은 호기심을 가지고 교회로 모이는데 그것이 바로 부흥이다.
1. 약속의 성령
1.1 사도는 그냥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 하지 않고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 받았다 말한다. 구약은 분명히 성령의 부어짐을 약속하고 있다.(사40장, 겔36,37장, 욜2장, 눅3:16,17, 11:13, 요7:37, 39, 14:16, 행1:4-8, 2:33, 갈3:14)
1.2 구약시대 사람들도 성령을 모시고 있었다. (시51:11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자녀일 수 없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마찬가지이다.
2. 성령의 인침의 부정적 측면
2.1 성령의 인침은 중생이 아니다. 오순절 날이 되기 전에 이미 제자들은 거듭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령의 주어짐을 체험하지 못했다.
2.2 성령의 인침은 영적 이해력을 가지고 성경을 이해하는 성령의 기름부음, 즉 성령의 조명이 아니다.
2.3 성령의 인침은 성화가 아니다. 성화는 하나의 체험도 아니요 주어지는 은사도 아니다. 우리가 중생하는 순간부터 마음 안에서 시작되는 성령의 역사가 성화이다.
2.4 성령의 인침은 성령의 열매가 아니다. 그것은 성화의 과정 중에 맺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인침을 체험하지 못하고도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2.5 성령의 인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얻게 되는 구원의 확신이 아니다.
2.6 성령의 인침은 성령충만이 아니다. 성령의 충만은 우리의 생활 속에 성령님을 모시고 항상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바울이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령충만은 우리가 그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여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3. 성령의 인침과 성령세례
3.1 사도행전은 성령의 인침을 성령세례받았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성령세례는 성령충만의 최초의 경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례는 성령이 예외적인 충만함으로 우리에게 부어지는 것이다.
3.2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인침과 같다. 성령의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행하신 약속, 곧 우리가 이 기업을 누리러 들어가고 있다는 약속을 인쳐 주시는 것이다.
3.2 성령세례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이 실제적으로 이루어진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바 잔치의 큰 날 마지막날에 성령을 부어주신다.
결론 : 성령의 인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친히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그는 우리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임을 친히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행동이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그에게 속하여 있음을 보증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인침의 본질2
(엡 1:13)
서론 : 인침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하나님의 아들된 성도에게 그 아들됨을 하나님이 직접 확증하는 것이다.
1. 성령의 인침 - 체험
1.1 성령의 인침은 하나의 분명한 체험이다.
1.2 만일 성령으로 인침받는 것이 체험적인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성령의 인침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1.3 오순절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 세상 사람들이 보고는 새 술에 취하였다고 말하였다. 전에는 전혀 느끼지도 알지도 못하였던 일들을 저들은 체험하였고 그것을 불신자들조차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1.4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에서 안수하였을 때 성령이 임재하였다. 베드로는 그것을 증거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행15:8) 하였다. 이것은 이방인들에게 왜 복음을 증거하느냐에 강력한 반박이 되는 확실한 체험적 증거가 되엇다.
1.5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질문하였을 때 저들이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고 대답했는데 만일 성령세례가 비체험적인 것이라면 어떻게 받았는지 않받았는지를 알 수 있겠는가?
2. 성령의 인침 - 양자됨을 인식
2.1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8:16)
2.2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감히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한다. 사실 이 말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시던 독특한 용어이다.
2.3 그런데 이제 우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저들의 마음에 양자의 영을 부어 주셨기 때문이다.
3. 성령의 인침 - 실제적인 체험
3.1 토마스 굳윈 - 322쪽
3.2 존 웨슬리 - 323쪽
3.3 죤 프라벨 - 323쪽
3.4 조나단 에드워드 - 324쪽
3.5 무디 - 325쪽
3.6 크리스마스 에반스 - 325쪽
결론 : 여러분은 성령의 인침을 체험하였는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이 압도적인 체험을 알았습니까? 누구나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된 체험과 기만적인 체험들
(엡 1:13)
서론 : 성령의 인침을 받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결과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직관적이고 직접적인 복된 확신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1. 성령의 인침과 은사
1.1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다 같은 은사들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1.2 성령의 인침을 받았다고 해서 반드시 은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성령의 인침의 중추적인 진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확신시켜 주며 하늘의 기업이 우리에게 있음을 증거하는 주는 것이다.
2. 성령의 인침과 회심
2.1 사람이 회심하므로 죄사함을 얻고 구원함을 얻으며 화평과 평안을 얻게 된다.
2.2 성령의 인침은 회심할 때 체험하는 것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2.3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은 말씀을 믿고 말씀의 교훈을 얻으므로 얻는 평안이다. 그러나 성령의 인침은 성령님께서 직접 확증하여 주시는 것이다.
3. 성령의 인침과 성화
3.1 성화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평생토록 계속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침은 어떤 특별한 시기에 특별한 장소에서 주어진다.
3.2 성화는 밖에서 받아들이는 한 체험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약동하는 것이다. 그 일은 거듭나는 순간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3.3 성령의 인침은 명백한 체험이다. 성령의 인침은 성화를 촉진시킨다. 성령의 인침은 체험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정서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결론 : 우리는 흥분주의, 감정주의, 이상한 열광주의와 이상한 현상을 두려워한 나머지 성령을 소멸하는 데까지는 나가지 않도록 극히 조심해야 한다.만일 우리가 성령을 소멸하는 지점에까지 나아가면 우리 자신도 그러한 놀라운 복락을 스스로 박탈당하는 것이요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그러한 복락을 앗아갈 수 있다. 그 놀라운 복락은 하나님께서 모든 하나님의백성들을 위해서 예비하신 복락이다.
인침에 관한 난제들과 문제점들
(엡 1:13)
서론 : 성령의 인침의 체험에 관하여는 말로 묘사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은 아무리 희미하게 체험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다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체험인 것을 알 것이다.
1. 성령의 인침 - 체험
1.1 초대교회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인침을 체험하였는가?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과 이 서신을 회람하여 돌려 본 다른 교회의 성도들이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1.2 그렇다면 성령의 인침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초대교회는 특별한 부흥을 체험한 부흥기의 성도였다. 부흥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의 인침을 체험한다.
1.3 사도는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받아야 함을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성도의 표준과 모범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1.4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의 인침을 받든 못받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가장 비천하게 보이는 그리스도인이든, 가장 뛰어난 그리스도인이든 그들 모두의 아버지이시다.
2. 믿음과 체험
2.1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모든 축복을 받으려 한다면 그저 믿음으로 취하면 된다는 가르침이 있다. 감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2.2 그러나 성령의 인침은 그저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매우 체험적이고 감정과 매우 깊은 상관 관계가 있다. 성령이 우리에게 인칠 때 우리는 그것을 명백하게 알 게 되는 것이다.
3. 성령의 인침을 받으려면
3.1 성경을 연구하고 약속들에 대하여 탐구하라.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은 바로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받아들이라.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라.
3.2 그리고 나의 간구가 바른 간구임을 확신하라.
3.3 하나님을 추구하라. 하나님의 의와 거룩,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구하라.
3.4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3:5).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 만일 이 사랑스러운 손님을 맞아 들이려면 우리 자신을 정결케 해야 한다(고후7:1, 약4:8, 벧후 1:5-8)
3.5 이러한 복락을 위해 기도하라. 그것을 하나님께 간청하라. 하나님으로 쉬지 못하게 하라(사62:7). 기도에 응답하기까지 그에게 계속 기도하라.
결론 : 그것을 구하라.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는가? 여러분은 이 복락이 무엇인지 알기까지 그에게 가서 구하며 울부짖으라. 주께 기도하오니 자비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소서. 그가 말씀해 주기까지 계속해서 그것을 구하라.
우리 기업의 보증
(엡 1:14)
서론 : 성령의 인침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확신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자녀임을 성령께서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증거함으로서 우리를 굳건히 세워주고 흔들리지 않게 한다.
1. 보증
1.1 보증이란 말은 옛날에 무엇을 사고팔고 할 때 사용하였다. 이것은 일종의 서약조로 주어지는 보증금을 나타내는데 어떤 사람이 땅을 산다고 할 때 미리 계약금을 걸어놓는 것과 같다.
1.2 보증의 특색은 그것이 살 물건의 대가를 분활하여 나눈 한 등분이라는 점이다. 보증은 나머지 지불할 것에 대한 보증을 분활금으로 지불하는 것이다.
2. 구속
2.1 구속은 단순히 죄용서 차원에서만 생각하여서는 안된다. 이것은 보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속이라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완성이다(고전1:30).
2.2 하나님께서는 일정한 수의 영혼들을 구속하시려는 완전한 계획을 갖고 계신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측면에서는 구속이란 이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모아지는 바로 그때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신32:9)
2.3 인침은 내가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임을 확신시켜 주는 것이며 보증은 그 일 자체에 관하여 내게 확신을 주는 것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을 받으리라는 확신을 증가시켜 주는 것이다.
3. 보증의 여러 가지 차원
3.1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다는 것은 앞으로 이루어질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에 대한 보증이다(롬8:23, 고후5:1-5). 내 안에 성령은 서약만이 아니라 우리 기업에 대한 일종의 계약금이기도 하다.
3.2 보증의 두 번째 국면은 우리 주님과 같이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된다는 것은 완전함, 절대적인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흠도 없고 티도 없고 주름잡힌 것이나 그러한 것이 조금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의 삶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3.3 우리가 주님을 보게 될 날에 우리는 그를 전적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마저 우리는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3.4 우리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계21:4, 롬14:17, 벧후1:8, 빌4:4).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하늘의 완전한 평강과 희락이 어떠한지를 맛보게 된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평강을 누릴 수 있다. 우리가 궁핍하든지, 풍부하든지, 빈하든지, 부하든지, 풍부함으로 넘치든지 우리는 이 하나님의 완전한 평강을 누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 : 우리는 지금 그것을 다 맛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한하신 은혜와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맛보기를 허락하셨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인침이요 보증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맛보고 있는가?
신앙고백의 시금석들
(엡 1:15-16)
서론 :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삶과 믿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감사를 드린다.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참다운 그리스도인일 수는 없다.
1.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1.1 바울은 저들 에베소 교인들이 믿음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며 바울이 떠난 뒤에도 계속해서 회심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들었다.
1.2 그런데 우리가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을 어떻게 아는가? 어떤 사람은 그런 것을 질문하는 것조차 싫어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자신을 확증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고후13:5)
1.3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은 믿음과 실제 삶의 두측면이다. 믿음과 행위의 측면을 골고루 살펴서 그가 그리스도인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약2:20)
2. 주 예수 안에서의 믿음
2.1 저들의 믿음은 첫째로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지만 예수님 안에 없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다른 종교를 섬기면서 자신은 하나님을 믿으니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시금석은 그것이 아니다. 너희가 주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을 가졌느냐 하는 것이다.
2.2 주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자각하는 것이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이 오셨다는 뜻이며 또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만 구원을 얻음을 믿는 것이다. 주 예수로 말미암은 구원은 바로 하나님이 제시한 구원의 길이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을 참되게 믿는 자이다.
2.3 바울은 예수 안의 믿음이라 하지 아니하고 주 예수 안의 믿음이라고 한다. 이는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고 영광의 주요 영원한 본체되는 분이요 복되신 삼위일체의 제2격위에 해당하는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말한 바대로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이것은 자연인으로 알 수 없는 믿음의 비밀이다.
2.4 주와 예수는 서로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동시에 우리의 구원자이시다. 주님은 대제사장이시자 동시에 화목제물이 되시는 것이다.
3.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3.1 본질상 우리는 다 서로 미워한다(딛3:3). 더욱이 자연인은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워하고 싫어한다. 저들이 볼 때 그리스도인은 둔하고 융통성이 없고, 부족하고 좁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라고 본다.
3.2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게 되면 그리스도인을 사랑한다. 세상의 지위높은 불신자와 가지는 교제보다 신자와 가지는 교제를 더 좋아한다. 그리스도인은 한마디로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본성을 받은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형제요 자매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과 관련을 맺은 사람이다. 그런면에서 그리스도인은 서로 통하는 것이다. 서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사이이다.
3.3 성령이 아니고는 우리는 서로가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만일 성도들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성령님이 그 안에 계시다는 증거이다.
3.4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외적인 것 - 지식, 배경, 출신학교, 고향들을 묻지 아니한다. 다만 그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에 관심을 둘 뿐이다.
결론 : 우리는 출신이 어떠하든 배경이 어떠하든 한 배를 탄 사람들이다. 우리는 같은 본향을 가지고 잇으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는 세상에서 자랑하던 것은 아무것도 아니요 다 한 형제요 자매로 서게 될 것이다. 그 날을 바라보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을 아는 그리스도인의 지식
(엡 1:15-17)
서론 : 회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것은 영적 생명의 첫걸음과 같다. 그의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러므로 사도의 기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우리가 살펴보는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1.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1.1 우리는 너무 사람 중심적이고 주관적이어서 기도를 할 때 늘 우리에게서부터 시작한다. 우리의 상황과 현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기도 제목은 항상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1.2 그러나 사도바울이 처음 회심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런 주관적인 조건이나 상태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을 더욱 더 잘 아는 것이다.
1.3 우리 주님이 친히 대제사장적인 기도에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가져야 하는 지식은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지식이다(요17:3)
2. 아는 것 (지식)
2.1 이말은 피상적이거나 이론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확실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요 체험적인 심오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2.2 당시 초대교인들은 대개가 무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세상적인 지식은 부족하다 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가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2.3 이 지식은 마귀도 믿고 떠는 그런 지식이 아니다(약2:19). 마귀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엄위와 존엄하심을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들은 그저 떨뿐이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이 지식은 하나님과 실질적인 교제를 가짐으로 얻는 지식이다.
2.4 야곱이 약봅강에서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 두렵도다 이곳이여 다른 곳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고백했다. 이때 야곱은 진실로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가진 것이다(창28:16-17). 이 지식은 바로 이런 지식을 말하는 것이다.
2.5 그저 대충 적당히 아는 지식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그렇게 알았다. 저들은 율법과 성경을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았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까?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42:5) 고백했다. 이런 고백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2.6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시42:1,2). 그의 영혼은 간절히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다.
2.7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6:1-8). 이사야의 이런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3. 지혜와 계시의 정신
3.1 이것은 믿는 것, 신뢰하는 것, 심지어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령의 인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보증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은 하나님 자신을 인격적으로 잘 아는 것이다. 이것이 최고의 선이요 가장 높은 정상이다. 바울 사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바로 이러한 지식을 갖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3.2 이 기도의 성취는 새언약의 특별한 약속이다(렘31:33, 히8장 10장). 이 새언약이 이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 지는데 우리의 심비에 새겨져 잊혀지지 않도록 하신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
결론 :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에 관한 것을 믿는가 하는 것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그를 만나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느껴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광의 아버지
(엡 1:15-17)
서론 : 사도바울은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간구는 어떻게 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문제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우리가 조금이나마 하나님께 영적으로 접근할라치면 기도가 얼마나 심각하고 심오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면에서 사도의 기도는 우리에게 귀한 교훈이 되는 것이다.
1.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1.1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성령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
1.2 예수님은 기도의 대상이 아니라 중보자이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의 최종 목표는 하나님 아버지인 것이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주님을 의지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1.3 우리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기 위하여 아들이 오셨다는 것을 잊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아들은 우리를 아버지로 인도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요 그러기에 주님의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2. 아버지께 기도하는 방식
2.1 기도에는 두가지 극단이 있는데 하나는 지극히 형식주의적인 접근이요 다른 하나는 너무나 직선적인 접근이다.
2.2 형식적인 접근은 미사여구나 형식에 맞게 기도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카톨릭이나 성공회가 지향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런 형식적인 기도는 참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2.3 직선적인 접근은 하나님께 나아가 자기의 할말을 직접 고하고 그냥 뒤로 돌아서고 마는 것이다.
2.4 사도는 곧장 하나님께 나아가 내가 기도할 것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한 정식적인 호칭을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성도들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새언약하에서 유일하신 중보자 예수님을 두기에 구약성도들처럼 기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2.5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의 담대함과 온전한 소망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3. 영광의 아버지께 기도
3.1 영광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는 문구를 대하면서 모세가 하나님께 접근할 때를 연상한다 -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3.2 하나님은 스스로 모든 영광의 원천이요 모든 영광을 입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영광이시다.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특성이 이 영광 가운데 다 드러나는 것이다.
3.3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영광중에 드러나며 그러므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이 영광이 어느 정도 나타날 것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결론 : 이제 우리는 영화롭게 되는 과정이 이미 시작되었다. 언젠가는 그 과정은 완성되고 우리는 영광중에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영광의 하나님께 나아가 그 영광이 어떠함을 맛보아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이다.
지혜와 계시
(엡 1:15-17)
서론 : 욥은 "네가 하나님의 오묘함을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11:7)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필요하다.
1. 성령만이 허락하시는 지혜
1.1 이 지혜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지혜가 아니다. 왜냐하면 성령만이 지혜와 총명을 주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이다.
1.2 사람이 자신을 죄인으로 보고, 바른 구원관을 가지려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지혜가 필요하다.
1.3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 교제하며 살도록 지음 받았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이 교제가 끊어졌다. 구속의 전체 목적은 다시금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2.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의 실상
2.1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친구와는 몇시간이고 이야기하면서 하나님과는 한시간도 기도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2.2 사람들이 온갖 지혜를 다 짜내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고전1:21). 왜냐하면 이 지식은 감추인 지혜이기 때문이다(고전2:7). 이것은 하나님의 깊은 것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2.3 그러나 불학무식한 사람도 이지식을 터득할 수 있다. 이 지식은 세상의 지식이 아니고 영적인 지식이기 때문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결코 이것을 깨달을 수 없다. 시인을 이해하려면 시를 알아야 하고 음악을 이해해야 음악적인 사람이 되듯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영적인 지식을 이해할 수 있다. (고전2:14,11)
2.4 우리는 성령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를 수 없다.
3. 성령이 지식을 주는 방식
3.1 참된 지식을 얻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성경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상의 지혜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고전, 역사책, 철학책, 심리학 공부에서부터 인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저들은 결코 성경을 거론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반드시 성경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3.2 자연인으로서는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할지라도 십자가의 비밀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 수가 없다. 저들에게는 코앞에 이 진리를 가져다 주고 설명해 준다 할지라도 깨닫지 못한다. 왜냐하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속한 것들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3.3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얼마나 타락하고 오염되었지는 십자가를 아무리 설명해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율법과 성경을 공부했지만 이 계시의 비밀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3:4)
결론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가지도록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시발점에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면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아직도 알지 못한 것이 많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읽는 중에 갑자기 성경구절이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히사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지식을 늘어나게 하신다.
그의 부르심의 소망(엡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1:18)
서론 : 사도는 세 가지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바라고 있다. 각 간구마다 '무엇이며'라는 말로 도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1. 마음의 눈이 밝아지기를
1.1 인간에게 비극은 그 마음의 눈이 어두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고 그 마음이 허망한 것을 행하고 생각하는데 있다. 마치 눈은 있으되 백내장으로 볼 것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오로지 성령의 권능과 능력으로 마음의 눈이 열려져야 하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다.
1.2 영적인 지식은 분명히 점진적인 발전과 성장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뒤에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것을 향하여 달려가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고 있는가?
1.3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총명의 눈이 열려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죄악 세상에서 우리의 눈은 어두워지고 둔하여지기 쉽기 때문이다.
2. 부르심의 소망
2.1 이 소망은 자신의 소망이나 이기적인 야망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여 부르신 소망이다.
2.2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일반적인 부르심(소명)과 특별한(유효한) 부르심이 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한다. 그러나 들었다고 다 믿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속에 특별히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 하는 사람이 이 부르심을 받는 자이다.
3. 소망의 확신
3.1 내가 부르심을 받았는지 확신하는 것은 성령의 인침이 첫 번째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혹여나 죄악 가운데 빠질 때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의심하기 일쑤이다.
3.2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더 객관적인 확신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부르셨는지,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밝히 알아 깨달을 필요가 있다.
3.3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아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우리들은 시작은 잘 하나 마치지를 못하지만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시면 반드시 마친다.
3.4 하나님의 계획은 부르심이 그 시작이시다. 만일 하나님의 마음에 우리를 향한 부르심이 있다면 그것은 확실히 우리를 영화로운 자리에 부르시기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의미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확신함이라(빌1:6)
3.5 만일 우리가 거듭났다면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전에 아담 안에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그리스도안에 있고 다른 날은 그리스도 밖에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결론 : 여러분은 이 소망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이 소망이 확실합니까? 그것은 무엇에 근거하여 확신을 가지십니까? 자신을 점검해 보십시요.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엡1: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엡1:18)
서론 : 사도는 두 번째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알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물론 이 기도는 마음의 눈이 밝아진 성도들을 위한 기도이다.
1. 기업이란 무엇인가?
1.1 어떤 사람들은 그 기업이 성도 안에 있는 하나님 자신의 기업이라고 주장한다(신32:9, 벧전2:9). 다시 말하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구속을 받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광대한 가를 알도록 기도한다는 것이다.
1.2 또 다른 해석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기업의 성격을 알도록 기도한다는 것이다. 로이드존스는 바로 이 해석을 따른다.
2. 왜 우리는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아야 하는가?
2.1 사람들은 현실에만 충실하면 되었지 내세에 대한 것을 듣기 싫어한다. 그러나 내세를 잃어버린 세상의 혼돈, 무법과 부도덕과 악의가 판을 치고 만다. 사람다운 삶을 살려면 결국 내세에 대한 바른 관점을 가져야 한다.
2.2 이것을 생각함으로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롬8:18 -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기독교는 현재의 고통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롬8:23). 만일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고 한다면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고전15:32). 그러나 그러한 고통을 넘을 수 있는 힘은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자신을 깨끗케 하는 것이다(요일3:3).
2.3 주님도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것은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한 것이다. 우리의 시선은 항상 땅에 것을 고정하지 아니하고 하늘 위에 것을 집중해야 한다(골3:2). 나침반의 바늘이 일정하게 방향을 지시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방향을 바로 잡을 때 바른 삶을 살게 된다.
3.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은 무엇인가?
3.1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왜 이 풍성함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가 질문한다. 그것은 우리가 그 영광이 얼마나 광대하고 놀라운지 도무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도 삼층천에 올라가서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을 들었다고 고백했다(고후12:3,4).
3.2 사도는 영광의 풍성이라고 했다. 영광이라고 하면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최고의 것인데 그것의 풍성함이라고 말한다.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범주를 훨씬 초월한다.
3.3 그러므로 사도는 죽음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는다(요14:1-3, 17:24, 요일3:2, 빌3:21). 그곳은 요한이 본대로 정금과 맑은 유리로 이루어진 곳이다.
3.4 이 기업은 더럽거나 쇠하지 아니하고 썩지 아니하는 기업이다(벧전1:3-5).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오염되고 부패된다. 그러나 거기는 슬픔이나 눈물, 죄악, 분쟁 등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고 침체하게 하는 것이 없다.
3.5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것을 우리 성도들에게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마25:34).
결론 : 만일 여러분이 성도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 한 사람이라면 이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무 것도 그 영광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엡1:19-2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엡1:19-23)
서론 : 사도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 우리 안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알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한다.
1.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
1.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를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1.2 사도는 먼저 우리를 부르셔서 얼마나 크고 놀라운 영광과 기업을 예비하셨는지를 말한다. 동시에 우리에게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하며 죄 많은 존재인지를 생각나게 한다. 우리는 세상일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이며 더욱이 가장 교활한 적수인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노리고 있다.
1.3 여기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사도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다룬다.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부활하셨으며 어떻게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2. 능력의 위대함
2.1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바울은 고백하기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하였다.
2.2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5:17). 우리는 자꾸만 인간적인 차원에서 자신의 구원을 살펴보려고 한다.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는 분은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뿐이시다(엡2:1, 빌2:13, 1:6, 골1:29).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3. 역사 하는 능력
3.1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에 대해 사도는 최상급을 사용하여 표현한다. - 지극히 크심 -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한계를 훨씬 뛰어넘는 놀라운 능력이다.
3.2 역사하심이란 그저 단순한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역사하는 힘이다.
3.3 능력이란 말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요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고유한 능력을 의미한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막을 자가 없다.
3.4 물론 성경에서는 사망의 위력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공격함을 설명하고 있다(롬5:12). 또한 사단 마귀의 능력이 얼마나 큰 지도 말하고 있다.
3.5 그러나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던지, 이 세상과 세상의 어둠이 어떠하다 할지라도, 우리 몸 안에 있는 부패와 질병과 사망의 씨앗이 어떠하다 하더라도, 마지막 원수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것만은 확신할 수 있다. 아무 것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킬 수는 없다. 하나님을 물러나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없다. 가장 강력한 원수들, 사망과 지옥과 마귀는 모두 이미 주님의 부활 앞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결론 :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과 같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여러분은 여러분 안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고 계십니까? 이 진리에 확실하게 서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엡1:19)
서론 : 사도는 에베소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능력을 가질 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 안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1.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지게 되는 믿음
1.1 사도는 우리들이 어떻게 해서 믿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음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인의 삶 전부가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이다. 우리들이 마지막 날에 살 것도 하나님의 능력의 결과이다. 하나님의 이 강력한 역사하심을 떠나서는 전혀 그리스도인일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이 될 수조차 없다.
1.2 어떤 사람은 자신이 믿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된 줄로 생각한다. 이들은 죄와 타락의 결과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해졌는지를 알지 못하며 또한 거듭남과 중생에 함축된 의미를 인식하지 못하며, 왜 중생이 필요한지도 모르는 자이다.
2.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무지 얻을 수 없는 믿음
2.1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2.2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사람이 타락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고 영적 기능 자체가 마비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적인 관점과 세상적인 관점을 우수하다고 떠들어대며 산다. 저들은 철학자나 과학자들의 불신적인 입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2.3 타락이 인간의 이지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라. 인간은 죄 안에서 나고 죄 안에서 잉태되었다. 인간의 이지는 죄의 결과 어두움의 상태에 있다. 이것은 인간의 무지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무지는 특별히 영적인 무지이다. 그 앞에 복음을 가져다 놓아도 알지 못한다.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 마치 수건으로 그 마음이 덮이운 것 같다(고후3:15).
2.4 인간의 죄악된 마음 상태는 거만함, 교만으로 나타난다. 저들은 자신의 지성을 뽐내며 자신의 이성과 이지, 생각하는 능력을 자랑한다.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다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11:25,26).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 이것은 지성적으로 미련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적이고 교만한 인간의 지성 대신 영적인 지성을 가지라는 뜻이다.
2.5 이들은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한다(롬1:32). 사람들은 마음이 어두워서 일부러 진리를 가로막는다. 그러므로 예레미야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하였다(렘17:9)
2.6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미워하는 잘못까지 범하고 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7).
2.7 동시에 사람의 의지도 마비가 되고 부패하였다. 작심삼일 - 죄는 인간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혼자의 힘으로 믿음을 가지고 구원받을 수 없다.
결론 : 오직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가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전능한 능력이 얼마나 크신 지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적으로 무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시는 분이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능력(엡1:19-20)
서론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존재이며, 우리가 우리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이 인식이 그리스도인의 기쁨과 감사생활을 좌우한다. 오늘날 우리들이 기쁨을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삶
1.1 사도는 자신이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자가 된 사실에 놀라고 있다(갈2:20). 그 자신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완전히 불가사의한 것이다.
1.2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심과 십자가와 부활 등 모든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1.3 이 세상에 그리스도인이 한 명이 있거나 이제까지 단 한 명의 그리스도인만 있더라도 그것은 기적이다. 인간으로서는 믿고 구원 얻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내 침체하고 불행하며 의심하게 될 것이다.
1.4 성경적인 증거들 - 엡3:20, 고후5:1,5, 빌2:13, 3:10,11, 히13:20,21, 벧전1:3-5, 벧후 1:3, 요일4:4, 유24,25, 요17:11
2.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하는 소극적이 이유
2.1 이 능력을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세력들의 힘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의 사고 방식과 세상의 정신을 향하여 부단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교활한 힘을 알지 못하고 있다(요일2:15,16). 세상의 정신과 풍습은 그리스도를 떠나게 유도한다(딤후3:5).
2.2 우리는 육신과도 싸워야 한다. 육신의 게으름과 태만, 육신의 연약함과 습관 등이 우리로 하여금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2.3 마귀들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순전한 상태에 있는 아담과 하와까지도 타락하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힘인가? 하물며 우리일까보냐?(벧전5:8, 엡6:12)
3.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 하는 적극적인 이유
3.1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계명을 지킬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3.2 주님은 우리가 죄 용서함 받은데서 머물지 말고 온전하고 거룩한 상태로 나아가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3.3 우리는 맡겨진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충성하고 봉사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3.4 만일 하나님이 손을 놓으신다면 우리는 전혀 소망이 없는 자이다. 구원받았으니 끝이 아니라 이제부터 하나님의 능력의 손아래 사로 잡힌 자가 되어야 한다.
3.5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도 역사하고 계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자극과 강권하심을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느 날 갑자기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결론 : 우리는 하나님의 손안에 잇다. 그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또한 우리로 믿을 능력을 주셨다. 그는 지금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다. 우리를 짓고 계시며 다듬고 계시며 그리하여 완전을 향하여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손안에 있다. 하나님을 이 일을 계속하여 나가실 것이다. 그의 이름을 찬미하리로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엡1:22-23)
서론 :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함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1. 그리스도와 교회
1.1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매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사도도 이 교리를 큰 비밀이라고 하였다(엡5장). 이 비밀은 성령에 의하여 우리 마음 눈이 밝혀질 때만 알게 되는 것이다.
1.2 엡2장에서 교회를 건물로 비유하는데 그리스도는 요긴한 모퉁이 돌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은 기초로 묘사한다.
1.3 교회를 위대한 제국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큰 권위의 보좌가 중심에 놓이고 전세계에 흩어진 자기 백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제국을 다스리는 여러 방백들이 있다.
1.4 엡5장에서 그리스도와 교회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묘사한다.
1.5 예수님은 요15장에서 교회를 포도나무와 가지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2. 이 비유들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원리들
2.1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있음을 이 비유에서 알 수 있다. 이 연합은 기계적인 방식이 아니라 유기적이고 생명적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고전12:13). 이 연합은 우리의 힘으로 만들 수 없으며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 연합은 영구적이다.
2.2 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신다.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생명의 원천과 중심이 되신다. 몸은 머리로부터 생명의 활력을 얻는다(요1:16).
2.3 온 몸의 각 지체마다 각 부분마다 같은 생명이 발견된다. 이 연합은 성령에 의해 만들어진 연합이다.
2.4 교회는 그의 몸이니 그리스도의 생명이 충만하다. 어떤 의미에서 내 몸의 각 부분은 내 생명과 나로 충만해져 있다. 내 몸의 부분 중 나 아닌 곳이 없다.
3. 이 교리가 함축하는 것들
3.1 사단에 의해 우리가 시험에 빠지게 될 때 우리는 이 교리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분 안에 있는 그분의 지체이다. 그러므로 나 개인적으로 어떤 것이 문제가 된다 할지라도 머리의 생명이 내 안에 있다.
3.2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승천하신 이래 그의 몸인 교회는 완전해가고 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자라듯이 그렇게 교회는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3.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신비한 연합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함께 못 박혔으며 하늘 보좌에 앉으실 때에 거기 앉게 된 것이다. 아직 실제적으로 이것이 성취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주님은 먼저 이 모든 것을 이루시고 결국에는 이 모든 것을 완성하실 것이다.
결론 : 우리는 인간의 몸을 실례로 들어보자. 근육을 생각해 볼 때 모든 근육마다 생명과 힘이 있다. 그것은 거기까지 연결된 신경줄을 통해서 생명과 힘을 공급받은 것이다. 신경의 원천인 두뇌로부터 생명과 에너지를 받고 있으므로 근육은 살아있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된다. 근육은 활동함으로서 힘이 증가되고 자라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위로부터 공급받는 생명과 힘과 에너지를 통해서 운동을 하고 자라나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몸된 우리와의 관계이다.
최종적 완성(엡1:19-23)
서론 : 우리는 필요로 하는 힘이 몸이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로부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인식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를 알아야 한다.
1.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능력
1.1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신 능력의 모습을 알아야 한다. 지옥과 악의 모든 세력들이, 사망과 무덤이 주님을 붙잡아 놓으려 할 때 하나님의 강력으로 인하여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
1.2 또한 하나님은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셨다. 오른편은 권위와 영광의 상징이다.
2. 권위와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그리스도
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주어진 자리보다 높은 지위와 높은 영예는 없다. 그 권세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악한 영이든, 선한 영이든) 영적 세력들 위에 뛰어난 권세이다.
2.2 그리스도는 만물의 주인이시다(히2:8,9, 빌2:9).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도덕적이고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시다(마28:18). 이 사실을 의심하는 자는 마음에 두려움이 있다. 실로 주님은 역사의 주인이시며 일곱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계5:1-6).
3.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
3.1 사실 주님은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창세전부터 그 자리에 앉고 계셨던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께서 몸소 이 연약한 육신을 입으시고 낮아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가 다시 그 자리에 앉으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모든 것이 바로 우리 때문이다.
3.2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함께 이 모든 영광과 권세를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며 영광스러운 일인가!
3.3 성경은 그리스도인을 구원 얻을 후사로 묘사하고 있다(히1:14). 천사는 우리를 시중 드는 자로서(히2:5) 묘사하고 만물을 우리 발아래 복종케 하셨다(시2:7,8). 그리고 그날에 그리스도 안에서 존귀와 영광으로 관을 씌우신다(시2:9).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에 앉아서 왕노릇하게 될 것이다(고전6:2,3, 계3:21).
3.4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우리를 몸으로 주님은 자신을 머리로 묘사하고 잇다. 머리가 부활하셨으면 몸은 반드시 부활할 것이다. 우리가 무엇이관대 주님이 누리시는 그 모든 영광과 권세와 특권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시기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이것을 믿는 자(그리스도인)는 정말 복된 자이다.
결론 :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저들의 마음 눈이 밝아져서 이 모든 것을 보기를 소망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는지 그 소망을 바라보고 그 소망 안에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그 기업을 안다면 우리는 항상 찬송하고 감사하며 악한 것들에 굴복하지 아니하고 당당히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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