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곁을 급히 떠난
샤넬 코코 향
빈병만 남은 CoCo 향수병
든 건지 빈 건지 모르게.. 일부러 이렇게 찍었다
저 책들에게 자신의 향을 남기고 간..
꽃삽에 많이 남겼으면 했는데
수필집에 더 많이 남겼다..
* 이 책들은 낙서꾼님이 일전에 선물로 부쳐 주신 것입니다
낙서꾼님.. 열심히 잘 읽고 있습니다..*
모셔온 코코 샤넬..
내가 좋아하는 Chanel NO 5
신비스럽고, 관능적이며, 도발적이면서 역설적인 향의 코코와
달콤한면서도
내 곁을 급하게 떠난
샤넬 코코 향
-프시케-
쓰던 향수가 떨어진 지 꽤 되었지만
아직 새 향수를 사지 않았다
오래전 선물 받은 향수들이
아직도 화장대 위에 몇 가지가
안 쓴 채 자기를 써달라고
늘 올려다보고 있어서다
지난주
건희의 피아노 교습 시간에
늦은 게 화근이었다
부랴부랴 나가느라
향수를 뿌리는 대신
낮에 쓰는 향이 아닌
Evening 용인 코코 향을
향수 병째 핸드백에 넣고 나갔다
샤넬 코코
이것은 분무형이 아니라
예쁜 뚜껑을 열어
찍어 발라야 하는 것이었다
병이 쏟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가방에 넣은 내 생각이 짧았다
갑자기 앞에 가던 차가 신호도 안 주고
차선을 바꾸는 바람에
브레이크를 밟자
뒷좌석에 놓았던
핸드백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뒤에 앉은 건희가
손으로 잡으려 하기 전에
속절없이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잠시 후
코코 향이
온 차 안을 가득 메웠다
아
일이 터졌구나
순간 아깝다는 생각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아까워라
혼잣말로 중얼중얼
구시렁거리며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늦었지만
건희더러 가방을
세워 보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 있던 건희의 조그만
쿠션과 함께 떨어진
가방 안에서
샤넬 코코 향은
작은 쿠션 위에
온통 자신을 들어
붓고 있었다
아니 이미 다
들어부어져 있었다
아이고 아까워라
몇 달을 뿌릴 향수가
하루아침에
작고 귀여운
향수도 필요 없는
그 쿠션에
다 뿌려 호사를 시켰다
덕분에 가방에 있던
자질구레한 내 물건들에
온통 코코 향이다
카메라 지갑에도
코코 향이..
아침 산책길에
꼭 메고 나가는 그 작은 가방에
온통 그윽한 코코 향으로
꽃 향으로 즐겁던 내 코를
흠~흠~~ 거리게 한다
선물로 받아 읽던 책들
'한국 대표 수필집" 책에도
이해인 님의 '꽃삽' 책에도
전경린 님의 "천사는 여기 머문다." 책에도
코코 향이 스며들었다
족욕을 하며 읽는 내내
내 코는 즐거워한다
코코 향 때문이다
어수선하던 내 핸드백 안의
잡동사니들은
얼떨결에 향수 세례를 맞고
화들짝 놀란 듯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조잘조잘
오랜만에
호사스러운 향기에
야단법석이다
손수건에도
전화기에도
조그만 수첩에도
늘 안이 비어 있는
내 검은 지갑 안에도
운전 면허증에서도
지인들의 명함에서도
코코 향이 진동한다
아, 아깝다
내 코코 향.
그러나
기꺼이 자신을 희생해
많은 하찮은 것들에
향기롭고 고급스러운 향을
선사한
코코 향에게
머리 쓰다듬어 주고 싶다
이제 코코 향을
하루 만에 이별했으니
아무 때나 사용할 수 있는
Chanel No 5를
다시 사용해 보고 싶다
코코 향은 사실
저녁용이라 그런지
내겐 좀 무겁고 진하다..
내 선물 리스트에 써서
냉장고에 붙여 놓아야겠다
Chanel.. No 5
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서
엎지른 향수 코코를
선물 받은 지가
거의 20년은 되는 것 같다
아끼고 조금씩 가끔 사용하기도 했지만
전천후 사용할 수 있는
Chanel No 5보다 덜 사용한 것 같다
오래 그렇게 있었는데도
향이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이다
얼마나 밖으로 나오고 싶었으면
성질도 급하지
하루 만에
한꺼번에 쏟아질 게 뭐람
성질 급한 코코향
복숭아 향과, 귤향을 곁들인
오렌지 향에서부터
재스민향과 미모사 향을
같이 느낄 수 있는 장미향에
정향과 고수 향까지 함유한
그 불가사의하지만 매력적인 향들은
그렇게 급하게 내 곁을 떠났다
신비스럽고, 도발적이며, 감각적이며
톡 쏘는 듯하지만
달콤하면서도 역설적인 향만
내 물건들에
구석구석 골고루 남기고..
2011년 5월 20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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