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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지난날의 추억

할머니..할머니..나의 외할머니 안녕히...

by 프시케 psyche 2020. 6. 26.

 

할머니.. 할머니

나의 사랑하는 외할머니.. 안녕히

 

- 프시케-




 

 

 

20여 년 전 외할머님 칠순 때 1990년 
왼쪽에 조금 보이는 게 저랍니다


 

   

   우리 친정어머님 칠순 때 2009년 그때 외할머님은 87세.. 셨네요..   ******  

 

 

 

 

할머니, 할머니..

나의 외할머니..

 

 

-프시케--

 

 

이제 여름은 서서히

뒷모습을 보이며

새벽 산책길에

제법 선선한 새벽바람이

가을 향을

어렴풋이 내게 선사할 무렵

나는 너무나 사랑하는 나의

사랑 외할머님을

하나님께 천국 여행을

보내드렸다.

얼마 전 어머니께서 다니러 오실 때

같이 오시길 바랐던 차에

외할머님과의 통화에서

"너를 보러 가고 싶지만

비행기 타고 가다 죽으면

어쩌니?.. 혹여라도

미국에 가서 장례를 치르면

어쩌느냐." 하시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어머니께서 작년에 

외할머님이 섭섭해하실까 봐

이야기를 하지 않고 오셨을 때

큰외삼촌이 말씀하시길

어머님께서 이곳에 딸을 보러

갔다는 말을 듣고

그 딸을 못 보고 돌아가실까 봐..

어머님의 이름을 부르며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성통곡을 하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같이 오셨으면 좋았으련만..

마음만 안타까웠던 그날이

작년 이맘때 딱 일 년이다

어머님께서 작년 9월 8일에 

이곳에 들어오셨으니..

 

첫 손녀였던 나는

외가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해

하나뿐인 이모님과

두 외삼촌에게도

늘 귀여움을 독차지하기도 했으며

 우리 어머님이나 아버님을

부르실 때 늘.. 에미와.. 아비처럼

늘 내 이름이 앞에 붙었고..

외가댁으로

방학 때 놀러 가면

인기 최고였던 어린 시절

늘 외할머님의

맛깔스러운 손수 만들어 주신 

음식들은

어느 왕궁 공주 부럽지 않게

어린 마음에도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랑으로

늘 행복했다..

그런 할머님이 떠나신 것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시집갈 때 주신다고 목화를 재배할 당시

목화솜을 고이 따서 솜틀에 가지런히

타서 오래도록 준비해 놓으시고

내가 시집갈 날을 기다리셨던 외할머니

미국으로 온 지 20여 년이 되고

외할머님을 뵌 지는 13년이 되어가니

이렇게 불효한 손녀다 생각하니

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조건 없는 사랑의 1호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이제.. 나의 외할아버님이 가신 후

외할머님마저 떠나셨다..

마음 한 귀퉁이가 허전해

소식을 듣고 일주일은

멍하니.. 외할머님과의

추억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천진스러운 어린 날의

방학 동안은

늘 외가댁에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사랑으로

자랐던 내 유년시절의 기억은

온통 풍성한 시골 풍경의

넉넉한 인심의 외가댁 이웃분들의

따뜻한 미소와 사랑이

가득하게 가슴에서 움찔거린다

뽀얀 피부로 예쁜 모자를 쓰고

새로 산 원피스 팔랑이며

걸어 들어가던

시골길의 누런 흙들..

멀리서 피어오르는

외가댁 초가집 굴뚝 위로

솟아오르던 저녁밥 짓는

연기가 눈 속에 들어와

눈물로 환생한다.

몽글 피어오른

연기로 빚어진 

보고 싶은 외할머님의 얼굴에

머금은 주름진

미소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파문을 일으킨다

 

그리움으로 얼룩진..

오래된 사진첩을 뒤적이듯..

외할머님과의 추억을

저 깊은 세월 속에서

뒤적여 

한 장 한장 넘기며

눈물을 삼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손 모아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위한

새벽 기도를 빠뜨리지 않으셨던

그 기도 소리가

긴 파장처럼

소곤소곤

내 가슴속에

울려온다

 

하나님께 사랑하는 외할머님을

위한 마지막 기도를 드린다

 

할머니

할머니

나의 사랑하는

외할머니

 

안녕히..

 

 

 

2012 년 9월 11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