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 숨다
-류 시화-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갯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갯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갯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다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갯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뒤에 숨는 것
나무 뒤에서 숨는 것과
안개 뒤에 숨는 것은
다르다
***
이른 아침
일 년 전 이맘때만 해도
안개 낀 나무 사이를 운전해 지나가던 때가 있었다
문득..
그 시절의 그 안개 낀
나무 사이가 그립다
아침이면
나무 사이로
피어오르던 평온한 생각들
늘 음악과 함께 운전하던 마음이
안개보다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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