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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소리/오늘은 이런일이.....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by 프시케 psyche 2025. 3. 24.

 

 

 

 

 

https://youtu.be/-jy-UJrYeoM

 

 

시 "홀로서기"를 읽는 오늘의 심정

 

-프시케-

 

 

 

1987년 많은 소녀들의 입에 의해 낭송되었고

인용되었던 시

홀로서기

갈래머리 소녀들의 마음속 연인을

상상하며 읽곤 하던 시..

연애편지의 한 귀퉁이에 써보기도 하고

예쁜 그림을 그려 엽서 속에

써보기도 했던

그 젊은 날의 시..

시가 인기였던 시절의 이 시가

지금은 어떻게 읽힐지 궁금하기도 하다

시인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어쩌면 이 시도

왜곡되고 많은 이들의 구설에 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를  많이 읽었던 시절 읽었던 이들의 마음속엔

아직도 이 시가 남이 있을지도 모른다

300만 부 이상이 팔렸던 이 시의 위력이

26년이 지났던 그 사건 이후엔 어떻게 읽혔을까

그리고  시가 나온 지 35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읽힐까 자못 궁금하지만

나는 시 자체로 이 시를 한번 낭송해 보았다

 

 

 

 

홀로서기

 

 

서정윤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쪽을 위해

헤메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 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 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을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게 위해

마음의 창을 꼭 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어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는

더 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닫는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 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2025년 3월 24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