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 입은 한복
올여름에 이모가 맞춰준 건희 한복
건희
블로그 친구님들
추석 명절 잘 보내세요..
****
추석 명절과 한복 입기
-프시케-
명절이 되면
한복을 입는 것이
의례적인 행사가 내게
한 해에 두 번 설렘을 준다.
요즘 사람들은
번거롭기도 하고
불편하다고 마다하는 한복을
나는 왜 굳이 입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한복이 좋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국악이나 배워
명창이 되어 늘 한복을 입고
창을 부르거나
어여쁜 고전 무용가가 되어
승무며. 살풀이며 사뿐사뿐
버선발로 긴치마 톡톡 차는
춤사위를 위해
한복을 입었거나.
혹은 가야금이나 해금을 배워
잠자리 날개 같은 한복을 입고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아무런 연관도 없이
한복 입기만 좋아한다.
아마도 원했던 것은
나이 지긋이 들었을 때
옛적 심사임당같은 위인의
고귀하고 단아한 모습을 닮아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아놓고
옥색 세모시 한복을 입고
난을 치거나
멋들어진 붓글씨로
시를 쓰고 싶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중에 하나도 하는 것이 없이
그냥 한 해에 두 번 오는
구정과 추석에 한복을 챙겨 입는 게 전부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좋아하는지도 모르면서
한복 입혀 교회에 가곤 했다
이제 아이들도 성장하고
공부하느라 같이 있지 못하니
온 식구가 같이 입을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이 아쉽다
7년 전 친정 어머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
어머님을 비롯해 온 가족이 한복을 입고
교회에 참석한 때가 벌써 7년이 후딱 지나갔다
친정어머니는
한복을 좋아하는 나를 위해
몇 년에 한 번씩 한복을 맞추어 보내주시곤 했다
이제 그 어머니도 올해 팔순이시다
이번에 오시면 또 몇 해후나 뵐 텐데 하면서
어머니 뵐 날 만 기다리고 있다
한복이 예쁘게 살아나려면
한복만이 아닌 갖출 속곳들을
다 챙겨 입어야 한다는 주장 아래
속바지, 속치마, 속저고리, 버선,
물론 꽃신도 신는다
머리도 반드시 쪽 머리를 한다
ㅎㅎㅎ
옛날 사람도 아닌데
더군다나 숱도 많지 않은 머리에
곱게 빗어넘겨 쪽을 지을 때마다
단아한 정경부인이나 신사임당 같은
품위가 나오지도 않으면서
쪽 머리를 고집한다.
참으로 내가 생각해도 별 나다.
혹은 요리를 기막히게 해서
장금이 실력의 유명한 손끝 맛이 있어
한복 입고 요리하는 요리 연구가라도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아니고.
바느질을 잘해 근사한 한복 만드는
한복 연구가도 못 되었는데
무작정 한복이 좋아 한복을 입는 내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좀 다르다고 생각할 것 같다.
이제 세월이 더 많이 흐르면
어느 날 이렇게 한복 입는 것도
성가셔질 때도 올 것이다.
한복 다려 입고
머리 손질하는 일이 시간이
점점 길어지는 걸 보니
나이가 들었나 보다
이번 추석 주일에도
마침 건희가 올해 여름
청소년 모국방문 때
이모가 맞춰준 한복을
이번 추석 때 입으려고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건희도 다른 때에 비해
수월하게 한복을 입고 나섰다
(어릴 때와는 달리 요즘은 잘 입으려 하지 않았다)
예쁜 파스텔 색조의 한복을 입고
본인도 솜사탕 같은 빛깔이 곱다고
좋다고 한다.
이제는 다 자라서
혼자서 귀밑머리 땋아
머리도 혼자 빗었다.
엄마를 닮아서 건희도
명절 때마다 한복을 입는다고 하진 않겠지만
모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을 마다하지 않고 입는
건희가 한편으로 기특하기도 했던
이번 추석은
한결 명절다운 기분이다.
아쉬운 건
온 가족이 다 입었으면 좋았으련만
아빠와 영준이는 입지 않아
좀 서운하기는 했다.
한복에 어울리게
앞으로 사군자며 붓글씨 연습을
열심히 해야겠다.
어느 화창한 늦여름날
대청마루는 아니어도
뒤에 병 풍치고
돗자리 깔아놓은 공간에
옥색 세모시 치마에 흰 저고리
아니면 분홍 저고리를 입거나
흰 치마에 옥색 혹은 분홍 저고리를 입고 앉아
먹을 갈고 싶다.
이번 한복 입은 모습은
나이만큼의 세월의 흔적이
얼굴에 더 드리워져 있었다
한창 꽃다운 나이 건희와
나란히 서니 더더욱 나이가 느껴진다.
세월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새들이 유난히 크게 지저귀는 아침
한복 입는 유감을
끄적여 본다.
2018년 9월 2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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