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아~한 아침, 박하 향 내처럼
-프시케-
오랫동안 때가 묻은 은으로 만든
티 세트를
닦아야지 닦아야지 하며
미룬 게 정말 여러 달이 되었다
시커멓게 때 묻은 저 은 다기를 보니
내 마음속 가득하게 묻어있는
온갖 때가 느껴지는 날이다
마음도 하루하루 닦지 않고
묵혀 두면
저렇게 더러울 텐데
나는 내 마음을 매일 닦았는지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순수하고 반짝이던 마음에
세월의 흔적만큼
때가 여기저기 묻게 되는 것이
나만 그런 것 같은 부끄러움이 든다
욕심과 나태
시기와 질투
겸손하지 못함과
용서하지 못함
이기적인 마음
베풀지 못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덕지덕지
마음을 검게 덮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또한 우울하다.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이
온통 인터넷에 슬프게
나부낀다.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 향이 날 때까지가 아닌
문질러대는 은 다기의 표면에서
눈부신 꽃향 같은 하얀 은향이 날 때까지
마음속 깊은 찌든 때를
한 겹 한겹 벗겨내듯..
은식기를 닦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아픈 상처의 꺼풀들 조차도
다 벗겨내고 싶다
은 다기를 닦으며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듯
내 마음을 닦는 재료
끓는 물, 은박지
식초와 베이킹소다 같은 재료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 걸까?
듣는 귀 부드럽게 하기?
깊은 묵상?
좋은 시 읽기?
빨리 용서하기와 많이 사랑하기?
열심히 닦아
빛나는은 다기를 보니
마음이 한결 깨끗하다
내 마음의 찌든 때들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그 찌꺼기 속에 숨겨있을지 모르는
순수하고 빛나는
은빛 내 마음을
찾고 싶다
너무 두꺼운 때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
따뜻한 꽃 차 한 잔과 함께
살며시 읊조려 본다...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오늘 별세한 재독시인 허수경 시인의
글에서처럼
"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그래 이렇게 닦여진
은 다기로 우려낸 꽃 차향이나
하루하루 미루지 않고
내 마음의 때가 아직 얇을 때
닦아 낸다면
그 풋풋한 순수함의 화한 향에
얼마나 내 아침이 환할까?
박하 향처럼....
* 삼가 허수경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다가
-허수경-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이다 들어선다
가지 마라 가지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다, 다
두고 왔네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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