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름이 된 시인의 슬픔들..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프시케-
허수경 시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며칠을
그녀의 시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
그녀가 갔던 기차역으로 가기도 했고
초등학생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남강 모래사장에도 갔다가
그녀가 자주 말하는
아가들을 생각하기도 하고
머리에 흰꽃을 꽂은 처녀도 만나고
그녀가 갓 스물이었을 때 만난
그녀의 폐병쟁이 사내도 만나보고
붉은 꽃을 안쓰럽게 보다가
검은 꽃을 보며 슬퍼하기도 하고
늙은 새와 늙은 개를 보기도 하고
안개와 해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해보다가
울고 있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쉬고 있는 사람의
흰 꿈과 만났고
오래된 영혼의 소리를 들었고
바다가 돌아눕는 어느 날
달아나는 아이의
물빛 같은 숨을 느끼기도 하고
미술관 앞에 앉은 노인들이
맑은 전등 아래
물 흐르듯이 앉아있는 그곳에서
무를 수 없는 참혹과
킥킥거리며 이쁜 시인의 그대를
떠올려 보다가
혼자 가는 먼 집으로 떠난
시인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 한 방울 떨군다
거름이 된 시인의
슬픔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시인의 시어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배회하다
길을 잃고...
여름 지나
갈꽃 피는 가을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 지는
날이다..
시인이 기차를 기다리던 곳에서
손님이 냉면을 시키더라고 쓴
어느 기자의 르포 기사를
읽은 지 불과 몇 주가 안돼
시인은 그 여히 혼자서 먼 집으로 갔다
갈꽃 핀 기찻길을 지나서...
인천공항에서 10 시간하고
기차로 4시간을 더 가는
작은 도시 뮌스터라는 도시로
문상이라고 가고 싶은 마음이다
마치 오래전 알았던 사람처럼..
박완서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호미를 들고 뒤뜰의
잡초를 캐내며
몇 날 며칠을 뒤척이더니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문인이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으며
이렇게 마음이 심란한 걸까?
시인의 시 중에서
두 편을 올려 본다
" 혼자 가는 먼 집" 시집에서
마치 꿈꾸는 것처럼
허 수 경
너의 마음 곁에 나의 마음이 눕는다
만일 병가를 낼 수 있다면
인생이 아무려나 병가를 낼 수 있으려고……,
그러나 바퀴마저 그러나 너에게 나를
그러나 어리숙함이여
햇살은 술이었는가
대마잎을 말아 피던 기억이 왠지 봄햇살 속엔 있어
내 마음 곁에 누운 너의 마음도 내게 묻는다
무엇 때문에 넌 내 곁에 누웠지? 네가 좋으니까, 믿겠니?
내 마음아 이제 갈 때가 되었다네
마음끼리 살 섞는 방법은 없을까
조사는 쌀 구하러 저자로 내려오고 루핑 집 낮잠 자는
여자여 마침 봄이라서 화월 지풍에 여자는 아픈데
조사야 쌀 한 줌 줄 테니 내게 그 몸을 내주려오
네 마음은 이미 떠났니?
내 마음아, 너도 진정 가는 거니?
돌아가 밥을 한솥 해놓고
솥을 허벅지에 끼고 먹고 싶다 마치 꿈처럼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
흰 꿈 한 꿈
허 수 경
혼자 대낮 공원에 간다
술병을 감추고 마시며 기어코 말하려고
말하기 위해 가려고, 그냥 가는 바람아, 내가 가엾니?
삭신은 발을 뗄 때마다 만든다,
내가 남긴 발자국,
저건 옴팍한 속이었을까,
검은 무덤이었을까, 취중 두통의 길이여
고장 난 차는 불쌍해, 왜?
걷지를 못하잖아,
통과해내지를 못하잖아,
저러다 차는 썩어버릴까요
저 뱀도 맘이 아파, 왜?
몸이 다리잖아요 자궁까지 다리잖아요 그럼,
얼굴은 뭘까?
사랑이었을까요……
아하 사랑!
마음이 빗장을 거는 그 소리, 사랑!
부리 붉은 새,
울기를 좋아하던 그 새는 어디로 갔나요?
그런데 왜 바보같이
벌건 얼굴을 하고
남몰래 걸어 다닐 수 있는 곳만 찾아다녔지?
그 손, 기억하니?
결국 마음이 먹은 술은 손을 아프게 한다
이 바람……
내 마음의 결이 쓸려 가요
대팻밥 먹듯 깔깔하게 곳간마다 손가락,
지문, 소용돌이, 혼자 대낮의 공원
햇살은 기어코 내 마음을 쓰러뜨리네
당신……
2018년 10 월 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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