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가족/지난날의 추억

박하향 처럼 싸아~한 아침에

by 프시케 psyche 2020. 7. 6.

 

 

 

 

싸아~한 아침, 박하 향 내처럼

 

 

-프시케-

 

 

 

 

오랫동안 때가 묻은 은으로 만든

티 세트를

닦아야지 닦아야지 하며

미룬 게 정말 여러 달이 되었다

시커멓게 때 묻은 저 은 다기를 보니

내 마음속 가득하게 묻어있는

온갖 때가 느껴지는 날이다

마음도 하루하루 닦지 않고

묵혀 두면

저렇게 더러울 텐데

나는 내 마음을 매일 닦았는지

생각해 본다

세월이 흐르다 보면

순수하고 반짝이던 마음에

세월의 흔적만큼

때가 여기저기 묻게 되는 것이

나만 그런 것 같은 부끄러움이 든다

욕심과 나태

시기와 질투

겸손하지 못함과

용서하지 못함

이기적인 마음

베풀지 못하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이

덕지덕지

마음을 검게 덮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 또한 우울하다.

 

허수경 시인의 별세 소식이

온통 인터넷에 슬프게

나부낀다.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 향이 날 때까지가 아닌

문질러대는 은 다기의 표면에서

눈부신 꽃향 같은 하얀  은향이 날 때까지

마음속 깊은 찌든 때를 

한 겹 한겹 벗겨내듯..

은식기를 닦는 마음으로

내 마음의 아픈 상처의 꺼풀들 조차도

다 벗겨내고 싶다

은 다기를 닦으며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하듯

내 마음을 닦는 재료

끓는 물, 은박지

식초와 베이킹소다 같은 재료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 걸까?

듣는 귀 부드럽게 하기?

깊은 묵상?

좋은 시 읽기?

빨리 용서하기와 많이 사랑하기?

열심히 닦아 

빛나는은 다기를 보니

마음이 한결 깨끗하다

내 마음의 찌든 때들도

한 겹 한 겹 

벗겨내며

그 찌꺼기 속에 숨겨있을지 모르는

순수하고 빛나는 

은빛 내 마음을 

찾고 싶다

너무 두꺼운 때로

보일지는 모르지만....

.

따뜻한 꽃 차 한 잔과 함께

살며시 읊조려 본다...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오늘 별세한  재독시인 허수경 시인의

글에서처럼

 

 

" 살아가는 거야, 서로 사랑하는 우리,

상처에서 짓이겨진 박하 향기가 날 때까지

박하 향기가 네 상처와 슬픔을 지그시 누르고

너의 가슴에 스칠 때

얼마나 환하겠어, 우리의 아침은..."

 

그래 이렇게 닦여진 

은 다기로 우려낸 꽃 차향이나

하루하루 미루지 않고

내 마음의 때가 아직 얇을 때

닦아 낸다면

그 풋풋한 순수함의 화한 향에

얼마나 내 아침이 환할까?

박하 향처럼....

 

 

 

 

* 삼가 허수경 시인의 명복을 빕니다

 

 

 

바다가

 

-허수경-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이다 들어선다

가지 마라 가지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다, 다 

두고 왔네

 

 

 

 

2018년 10월 4일 목요일 아침

 

 

 

 

 

'가족 > 지난날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의 마지막돌이 되어서라도 ..영화 "안시성"을 보고  (0) 2020.07.06
거름이 된 시인의 슬픔  (0) 2020.07.06
10월...손잡고 가자  (0) 2020.07.06
그 모호함 ..안개여라  (0) 2020.07.06
달의 마음  (0) 2020.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