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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소리/끄적여본글

건망증과 곰국 대소동

by 프시케 psyche 2020. 7. 26.

 

 

**저 때문에 수난을 겪은 귀한 냄비

 

 


** 오늘 아침 저를 행복하게 한 Honey Suckle Flowers
너무 예쁘지요?



안녕하세요? 이향숙님..

오늘도 날이 화창한 토요일입니다..
두 분 모두 좋은 주말 보내셨지요?
온통 Honey Suckle 향이 진동을 하는 운동장에서 
정말로 땀을 흠뻑 흘린 아주 개운한 토요일입니다
며칠째.. 우여곡절이 있는 커튼, 침구 세탁 등의 바쁜 일을 뒤로하고..
이 아름다운 오월의 아침을 즐겁게 뛴 아침이었습니다.

오늘은 요즘 제가 커튼이며.. 침구들을 세탁하는 이유인
얼마 전 제가 사고 친 곰국 대소동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글을 보내드립니다..
정말 잊지 못할 (Unforgettable) 건망증(?)과 곰국 대소동이랍니다..


이글과 듣고 싶은 음악은요.. 

Natalie & Nat King Cole의 Unforgettable 
을 이향숙 님과 김영 선생님.. 수고하시는 여러 Staff 여러분..
늘 고마운 희야 엄마.. 정오, 정완 엄마 
그리고 일전에 곰국을 끓이셨던..
지금 끓이고 계실, 혹은 언젠가
끓이실 많은 애청자 분들과 듣고 싶습니다..

****

곰국을 태워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며칠째 감기몸살로 고생을 한다고
시누이의 손아래 동서인 희야 엄마가
육개장을 너무 맛있게 끓여 왔습니다..
음식 솜씨도 좋지만 마음이 더 예쁜
희야 엄마의 육개장은.. 정말 환상이었답니다..
옆지기는.. 입이 귀에 걸릴 만큼 맛있다고 난리고
영준이와.. 심지어는 건희까지.. 맛있다고 
야단입니다..
" 정말 맛있다.. 매번 너무 고맙고 미안한데..?"
옆지기는 먹을 때마다.. 칭찬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 엄마.. 엄마가 아플 때는 이렇게 맛있는 거 먹는 거야?"
영준이도 한마디 거듭니다..
" 아유.. 매워...." "벌컥벌컥"
건희는 연신 매운 육개장에 밥을 말아
얼굴이 빨갛게 닳도록 호호 불어가며 먹고 있습니다..
언제나.. 음식을 하면.. 4 식구보다 더 많이 해서
늘 저희에게 어떻게든 나누어 주고 싶어 하는 
희야 엄마의 따뜻한 마음이 너무 이쁩니다..
어른들은.. 음식을 선물로 먹고 나면
빈그릇을 보내면 안 된다 하시기에..
몸이 아프니.. 따로 다른 건 준비하지 못하고
집에 있는 사골을 고아서 곰국을 갖다 주자고 하며..
열심히.. 커다란 들통에 한들 통 올린 다음..
더 맛있게 하려고.. 육개장 끓여온 
그 냄비( 이 냄비가 스토리의 발단이랍니다..)에
따로 정성스레 끓인답시고. 가져온 예쁜 냄비에..
큰들 통과 나란히.. 스토브에 올려놓았습니다
국물을 한번 끓여내야지. 하며..
한소끔 끓여낸 물을 쏟아붓고..
새물로 올려놓고.. 머리가 욱신욱신..
기침이 콜록콜록... 감기약을 먹고
잠시 영준이 방에.. 숙제를 봐주다 말고
곰국 올려놓은 것도 잊은 채...
약기운에 잠이 들었답니다.
아마도 잠든 시간이 11시 정도였나 봐요..
그날따라. 옆지기도 축구시합 때 입은 부상 때문에
일찍 잠이 들었었답니다..

4시간 후... 새벽 3시..

"왠.. 연기야?" 하며
눈 비비며.. 저를.
옆지기가 흔들어 깨웁니다..
일어나 눈을 떠보니..
온 부엌이 연기로 꽉 차 있었답니다..
"어머나.. 불.?. 웬 연기?" 하며
부엌으로 나오는데..
우리 민희(강아지)는 부엌 바닥에 엎드려..
연기 때문에.. 짖지도 못하고..
슬픈 얼굴로 올려다보고..
잠이 번쩍 깬 모습으로 
얼른 스토브로 가 검은 연기가 푹푹 나오는
냄비를 내려놓고.. 불을 끈 다음
온 집안의 문과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었습니다
잠자는 건희와 영준이도 깨워..
새벽 3시에 대피 아닌 대피 소동!!
모든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
뒤뜰 포치 의자에 앉아 
창문으로 나오는 연기를 속수무책 
보고 있어야 하는 모습.. 상상이 가시나요??
아무리 약기운이었다지만..
어쩜.. 그리 까맣게 잊고 잠들 수가 있었을까요?
완전.. 깜빡증을 지나.. 건망증의 극치였답니다..
심하게는 혹시 치매가 아닐까?? 도 생각할 정도로..
연기가 새벽 찬 공기에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저의 건망증이.. 큰일을 낸 거지요..
곰국이 탄 냄새는 다른 냄새보다 심하기 때문에
이웃이 혹여 냄새를 맡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한밤중의 소동을 끝낸 후..
냄새는 나지만.. 연기는 좀 빠진 듯했을 때..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던 옆지기도.. 
어이가 없었는지.. 큰일 날뻔했다는 말만 하고
문 닫으러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모습에
어찌나 미안하고.. 고마웠던지 모릅니다..
들어와 냄비를 들여다보니..
숯도.. 그렇게 검을 수는 없을 거예요..
사골들이 까맣게 탄 냄비 속은 완전 Black이었는데요..
저는 냄비가 아주 삭아버렸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어쩌면.. 냄비의 바깥쪽은 멀쩡했고.....
심지어 냄비 손잡이 조차 플라스틱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랍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어..
곰국 끓여다 주려다가.. 냄비만 못쓰게 만들었으니..
옆의 들통은 양이 많아.. 알맞게 고아졌지만..
조그맣게 따로 올린 히야네 곰국은 
귀한 냄비 안에 검은 상처만 남긴 채 
국물이 적어 까맣게 타버린 거지요..

다음날.. 냄비를 변상해야 하는 마음에....
미안한 마음으로.. 전화를 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한 후..
냄비에 대한 정보를 물었는데..
희야 엄마가 혼수로 해온 그 냄비는 다행히..
평생 품질 보증되는 냄비라고 하는 거 있죠.
아무리 험한 모습으로 태웠어도.. 회사로 보내면
새것을 보내 주거나.. 세척을 해서 보내준다는 말에..
얼마나.. 미안하고 감사하던지...
그것도 모르고.. 저는 그 냄비를 버릴뻔했거든요.. 
버렸으면.. 어쩔뻔했어요..
휴~~ 우.. 십년감수.. 귀한 냄비를 잃을 뻔했잖아요..
저의 건망증(?)으로 빚어진 이 곰국 소동에..
요즘 며칠째.. 그 탄 냄새 제거하느라..
온 집안의 커튼이며.. 의자 커버.. 침대커버 세탁하느라
정신이 없답니다..
그래도.. 이래 저래..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오히려.. 집안 청소를 하는 계기가 되어
다행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은 거의 십년감수한.. 소동에 가슴 쓸어내리며
한 바탕 새벽 소동을 이렇게 지나고 나니
담담하게 저의 잊을 수 없는 건망증(?)과 곰국 대소동을
여러분께 고발합니다,,,

****



정말 새벽에 치른 소란스러운
곰국.. 대소동으로
희야 엄마의
서로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같이 나누고 싶기도 했고..
옆지기의.. 일어난 일에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않은
온유한 마음을 고마워하기도 했고
고마운 마음을 갚으려다 생긴 일이라 그런지
귀한 냄비도 잃지 않게 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싶고..
무엇보다도.. 그 일로 인해..
때아닌.. 집안 청소까지 할 수 있게 해주기도 했고
그리고 너무 다행한 것은
이보다 더 큰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신 것과
이번 일로.. 정말로 버리기 싫어하는 제 습관도
귀한 냄비를 잃지 않게 해 준 고마운 일이었음이
이 건망증(?)과 곰국 대소동이
내게 가르쳐준.. 귀한 교훈이었음을 가슴으로 느끼며
부끄럽지만 이렇게 불량주부(?)라는 사실을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오늘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잊지 못할 아름다운 하루 되시고
여러분들은.. 곰국 올려놓으시면..
저같이 잠들거나 잊지 마시고..
꼭 확인하실 거죠?.



2009년 5월 9일 토요일 오후
캐서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