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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소리/오늘은 이런일이.....

떠나는 가을

by 프시케 psyche 2022. 12. 13.

 

가을이 떠난다

 

 

프시케

 

 

 

 

한 계절이 긴 한숨을 쉬며 빈 플랫폼을 향해 걸어간다

아직도 그려 넣지 않은 미완의  유화처럼

군데군데.. 상처들로 덧칠된 삶의 딱정이가 진 

그 황혼의 나이는  갈색으로 칠해져 있다... 

 

초록으로 싱그럽던 그 마음을

갖가지의 비빌스런 색으로

변색을 해가며 지난날의 녹색 젊음의 색은 지워가며..

하얗게 비어있던.. 중년의 공간은 점점 아름다워져 간다

어설프고 순수한 어릴 적 추억들도 덩달아..

점점 알수 없는 혼미함 속으로 흐리게 흐리게 퇴색되어 가고 

검버섯 모양 군데군데 점으로만 남아있다..

 

한창이던 때.. 기고만장한 마음의 복잡한 심경의 색들..

미움의 색으로..불만의 색으로 혹은 이기의 색으로.. 욕심과 자만의 색으로

얼마간 몸을 감쌌던 그 짧은 유혹의 색을 입은 허울들을..

하나 둘 자아의 몸통에서  바람에 날리며  이별을 하고 있다.

 

 

점차 드러나는 빈가지의  모습은

치부가 드러나는 부끄러움 보다는.

드러내도 좋은 비움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조금은 추워 보이는  나목으로도 족하다..

.

 

뜰 위에 살랑이던 파릇하던 풀잎들이

저마다.. 다이어트에 지친 듯..

가늘고 여린 갈색으로 메말라 간다..

제 몸의 수분을 날려 보내듯..

아집과.. 편견과.. 사랑하지 않음을  버리려

안간힘을 쓰는 단점투성이의 살찐 영혼의

다이어트  식단처럼  빈약해져 간다....

 

 

늘 청명하게 웃어주던 파란 하늘은

많은 것들이 떠나는 땅 위의

모든  떠남이 서러운 듯..

오늘은 우울한 모습으로

잿빛 얼굴로 뾰로통 입을 내밀고

금세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슬픈 얼굴을 하고서.. 눈 흘기며 내려다보고 있다

 

저마다 엉성하게 서있는  나무들 사이로

뿌리도 알 수 없는 가십들처럼 희미한 안개만.

이리저리 길을 헤매고..

황당한 사연 가득  담은  무성한 가을 풍문은

시린  귓등을 지나  순식간에  귓속 동굴로 걸어 들어온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속삳임으로..

모은 두 손을 더 동그랗게 한채.

짧았던  그 한 계절의 뒷소문을 더 그럴싸하게 꾸며대며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보일 듯 말 듯  흐린 눈빛 가득

슬픔 한 방울 그렁그렁 매단 채..

들려오는 아득한 기적소리와 함께.

외로운 가로등을 스치며 지나는 쓸쓸한   바람은 

마지막 차표를 쥔 떠나는 계절의 

여민  바바리코트 깃을 더 단단히 여미게 한다

 

외로이 내려다보는 가로등 불빛은..

아직도 못다 한 말로..

아직도 하지 못한 용서로.

아직도 주지 못한 사랑으로

끝내  떼지 못하는 그 서글픈  발걸음에게

쓰다가 만  아련한 사랑의 시를 뻘쭘히 건네어 본다..

 

잎사귀 몇 안 달린  늘어진 나무 가지들은 

남은 잎사귀마다 실린

애달픈   사연들을 을 적어..

수신자 없는 그 빈 낙엽 편지들을..

무심히 역사 옆  우체통 안으로  하나씩 밀어 넣는다...

 

 

 

쓸쓸한 무게를 담은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바바리코트 깃 굳게 여민 그 계절은 

방금 도착한 겨울행 기차에 몸을 싣는다.

서서히 떠나며 흩뿌리는 기차 연기는

흐린 가을 하늘을 향해 점 점 더 넓게 퍼져만 간다..

 

방금 떨어진 잎새 하나가..

선로 위에.. 사뿐히 가라앉는다..

가을이 떠난다....

 

 

 

 

****

 

 

이제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야 할 때이다

경황없이 지나간 몇 주...

딸아이의  호전을 기도하다 눈을 뜨니

문득 12월이 벌써 반이 지나가고 있다

성탄 트리 장식도 못한 채

앙상한 복숭아나무를 보니

해마다 했던 성탄 장신구를 꺼내어

간단하게라도 치장해야겠다

떠나는 가을에게 손 흔들 틈도 없이 11월은 가고

성급해진 12월도 소리 없이 종종걸음으로

코트 깃 세우고 달음질친다

이제 가고 있는 12월에게라도

손 흔들어 주어야겠다

 

 

 

**12 년 전에 썼던 글이네요

 

2010년 11월 30일 화요일에 썼던 글을

2022년 12월 13일 화요일에 옮겨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