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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소리/오늘은 이런일이.....

찬란 - 이병률

by 프시케 psyche 2024. 6. 3.

 

 

https://youtu.be/e9_xFCuEzUQ

 

 

 

Facebook에선  지난 포스팅을 같은 날짜에 알려주곤 한다 

그 덕분에 지나간 날들을  더듬어보는 시간을 갖는 시간이 내겐 찬란이다

자칫 지난날을 소환하지 않으면 

내가 그때 무엇을 했는지 모르고 지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렇게 내가 그때 무엇을 했고 어떤 시를 읽었는지 어떤 글을 썼는지

일부러 찾지 않고 알려오는 것 또한 내게 찬란이다

너무 지난 날을 뒤돌아 보는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나간 일 또한 내게 앞으로 올일과 함께 내겐 소중한 찬란이다

이병률시인은 아무것도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는것을 찬란이라 했다

나의 뒤뜰 화분에도 언제나 겨울을 지나며 잎이 시들고

아무것도 다시 나지 않을 것 같던 곳에서

작은 잎이 돋아나고 자라나는 것을 보는 그 순간순간이

내게도 싱그러운 초록 찬란이다

이제 6월이 되어 나의  새로운 한 달이 시작되었다는 것도

지극히 설레는 찬란임이 분명하다

 

작년 이날 나는 이런 시를 읽고 낭송을 했구나

라며 알아차림 또한 나에겐 찬란 이리..

 

2024년 6월 3일 새벽

 

 

 

찬란

 

겨우내 아무 일 없던 화분에서

잎이 나니 찬란하다

흙이 감정을 참지 못하니 찬란하다

 

감자에서 난 싹을 화분에 옮겨 심으며

손끝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듣는 것도

오래도록 내 뼈에 방들이 우는 소리

재우는 일도 찬란이다

 

살고자 하는 일이 찬란이었으므로

의자에 먼지 앉는 일은 더 찬란 이리

찬란하지 않으면 모두 뒤처지고

광장에서 멀어지리

 

지난밤 남쪽의 바다를 생각하던 중에

등을 켜려다 전구가 나갔고

검푸른 어둠이 굽이쳤으나

생각만으로 겨울을 불렀으니 찬란이다

 

실로 이기고 지는 깐깐한 생명들이

뿌리까지 피곤한 것도

햇빛의 가랑이 사이로

북회귀선과 남회귀선이 만나는 것도

무시무시한 찬란이다

 

찬란이 아니면 다 그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목숨은

찬란의 끝에서 걸쇠를 건져 올려

마음에 걸 것이니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리고도 겨우 일 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

 

 

2023년 6월 3일에 썼던 글을

2024년에 다시 읽어보는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