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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지난날의 추억

어머님의 사랑과 아침에 벌어진 한복 패션쇼

by 프시케 psyche 2020. 6. 20.

어머님의 사랑과 
아침에 벌어진 한복 패션쇼 






* 제 분홍치마와 흰 저고리

 

 

* 아이리스 황진이 한복

* 영준이 한복
예쁘지요??

오늘은 운동이 끝나자마자
봄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네요..
이 비가 그치면..
정말 예쁜 봄꽃들이
웃으며.. 방글방글 피어날 것 같지요?
오늘은 
그리운 어머님께 받은
꾸러미를 보며 
어머님의 사랑을 자랑하고 싶네요..


***

어머님의 사랑과 
아침에 벌어진 한복 패션쇼 



목요일 저녁 즈음..
옆지기는 커다란 소포 꾸러미를
보여주며 미소 짓습니다..
"한국에서 소포가 왔나 봐""
"어머나.!"
신이 나서 풀어본 꾸러미엔
건희의 고운 한복..
이한복이 요즘 유행한다는 그 한복 인가?
입이 커다랗게 벌어지며 웃고 있는데..
그 밑엔.. 영준이의 한복이 있었습니다
" 영준아.. 
외할머님이 보내주신 한복이다.." 
한번 입어볼래..
평소에.. 불편하다며 입기를 꺼리던
영준이의 한복이 키가 껑충 커버려서
소매가 반토막이 되었던 터라..
주섬주섬 입어보며 좋아라.. 싱글거립니다..
" 우~와 새신랑 같다!" 연보라 저고리에 진보라 바지
그리고 짙은 청색 조끼로.. 약간은 입기 편하라고
쎄미 개량 한복입니다..
옆지기와 저는 흐뭇한 마음으로
늠름한 한복 입은 영준이를 보며
미소 짓습니다..

" 건희야.. 너도 입어볼래??
이건 완전.. 황진이 한복이다 얘...
너무 멋진데.."
건희도 어렸을 적엔 엄마가 입으라는 대로
곧잘 잘 입던 한복을 유난히 이번해엔
입으면 껄끄럽다고 투덜대곤 했는데
오늘은 자기가 보기에도 예뻤던지
쪼르르 달려와서 입어봅니다..
입히고 난 후..
" 건희야.... 그 한복엔 머리가 올려져야 이쁘겠다".. 하면서
얼른 빗으로 빗어 쪽을 져 주었습니다..
" 우~~ 와.. 황진이가 여기 웬일이라니..?"
사실 건희는 황진이가 누군지 모릅니다..
특이한 디자인으로 요즘 유행한다고
한국의 동생과 친정어머님이 고른 배려입니다..
해를 걸러.. 아이들이 자라나는 키에 맞는 한복을
보내주신 친정어머님의 사랑이 
그 고운 한복을 입은 건희의 얼굴 위로 아른거립니다..
한참 유난을 떨다가.. 다시 박스 안을 보니
빼꼼히.. 올려다보고 있는 
하얀 저고리와 분홍치마가 보입니다..
갑자기 저의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고입니다..
갑자기 어머님의 인자한 미소가..
이 분홍빛 치마와 흰 저고리 위에 와 머물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옆지기와 한국 영화 " 천년학"을 같이 볼기회가 있었는데
어느 장면에선가.. 주인공 배우 오정혜 씨가 입은 한복 색깔이
분홍치마에 흰 저고리였는데...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열어놓은 문밖으로.. 매화가 만발한 매화밭으로
휘날리는 매화꽃잎을 등지고 
마지막 남편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창을 하며 구슬프게 보였던 장면을 보며
감탄하는 옆지기의 말이
" 정말 한복의 고운 모습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장면이네..
역시 임권택 감독님이셔. 저 매화꽃잎과 너무 어울린다.."라고
했을 때... 그때를 놓칠세라..
" 저 한복을 내가 입으면 어울리겠다고요??"라고
은근히.. 맞받아 쳤는데.. 
" 창을 하거나.. 가야금을 뜯는다면 한벌 해주고 싶은데..
창도 가야금도 할 줄 모르니.. 생각해 봐야지.."
그 후로 가끔.. 그 분홍치마와 흰 저고리 이야기를 
지인들과 담소를 나눌 때마다 하곤 했었답니다..
그런데.. 그 한복이 그날 도착한 것이랍니다..
언젠가 친정어머니와 통화하며 아이들 한복 색깔 이야기를
하다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친정어머님이 기억하셨다가 보내셨는지..
옆지기가 슬쩍.. 친정어머니께 이야기를 해 
보내온 건지.. 갸우뚱 하지만..
저는 그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워낙 한복을 좋아하는 터라..
한국에서 입던 구닥다리 한복도 다 싸들고 온 저랍니다..
미국에선 입을 일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명절이면.. 교회에라도 입고 갈 정도로 한복 팬인 제게
이 분홍치마와 흰 저고리의 도착이
얼마나.. 어머니와.. 옆지기에 대한 따뜻함이
전해 오는지.. 눈물이 났었답니다..
사실.. 영준이와 건희는 그날 입어보고 자랑을 했지만..
저는 그다음 날 아침 곱게 빗어 내린 쪽머리와
같이 보내주신 비녀도 꼽고. 저고리 밑에
노리개도 달고.... 아침 식사를 하는 옆지기 앞에 
나타나서는 
"쨔~~ 쟌.. 이것 보세요.. 어울리나요? 창을 하거나
가야금은 못 뜯지만.. 모습이라도.. 보여주려고.. 이렇게
아침 일찍.." 하면서 한 바퀴 휘 ~~ 돌아봅니다..
"음.. 어디 뒤돌아보지....."
"어때요?? 이뻐요?"
"....." 잠시 말이 없더니..
"... 매화꽃 같네.. 색이 참 곱다..."
" 창이나.. 가야금은 못하지만.. 한복에 어울리는
뭐를 해야 하나... 맞다.. 사군자 치는 걸 배워서
이 한복 입고 난치는 모습을 보여줄까??"

사실.. 사군자를 치고 싶은 마음은
저의 어릴 때 소원이었는데..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하면..
제일 먼저 되고 싶었던 게.. 아이들을 좋아해
고아원 원장이 되고 싶다고 했고
두 번째가
신사임당 같이 훌륭한 여성이 되어
나이 들었을 때.. 넓은 대청마루에서 
난을 치고 있는 모습이 되어보고 싶었던 적이
있었답니다..

갈길이 바쁜 아침상 머리에서
한복 패션쇼 하는 사람은 세상에 저밖에 없겠죠??

그날따라.. 어머님의 끝없는 사랑 조건 없는 사랑에..
또 묵묵한 옆지기의 조용한 사랑을
동시에 느껴본.. 매화꽃 향기만큼이나
향기로운 아침이었답니다..

이번 이 지역에서 열리는 " Cherry Blossom Festival Parade"
에 입고 구경 가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고
이 기회에 사군자 치는 동양화나 배워볼까?"라고
호사스러운 꿈을 꿔보기도 한 날입니다..

어머님.. 저는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 계셔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비록 효도는 못 해 드리지만..
어머니.. 어머니를 죽을 만큼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그리고.. 철없는 패션쇼를 윗트 있게 관람해준
나의 영원한 옆지기.. 당신도.. 이 ~~ 만큼 사랑합니다..

사실 그날 저녁.. 건희와 저는 다시 입어보라는 옆지기 앞에서
또 한 번 패션쇼를 했답니다.
상상이 되시죠?? 속없는 중년의 푼수 엄마와. 여덟 살짜리 딸내미의
천방지축 패션쇼가 어땠을지요..

오늘은 사군자의 매. 난. 국. 죽 의
매화향 나는 봄을 어머님께 한아름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

여러분.. 
남사스러우셨지요??
가끔 이렇게 철딱서니 없는 모습에
스스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의 사랑을 느끼는 순간..
저도 이제 불혹을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어머님이 보시기엔.. 아직도 저는
당신의 어여쁜 딸로 여기시는 
어머님의 사랑에.. 눈물겹답니다..
게다가.. 
철없는 아내의 푼수 같은 엽기적 행동에도
웃음으로 받아주는 옆지기가 있어
더더욱 행복하답니다..
결국은 팔불출을 못 벗어나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행복 가득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3월 9일

 



 

 천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