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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Movie I watched

삶의 여정- 영화 "희생" 을 보고

by 프시케 psyche 2020. 7. 6.

 

 

 

 

 

 

 

"The Sacrifice"(희생}"을 보고

 

-프시케-

 

 

경파님의 포스팅에

"영화 "희생"을 보고도 눈물을 안 흘린다면

당신의 삶은 기적이 아니라 투어에 가깝다"

라고 로쟈 이현우 교수님의 말씀을.

써놓으신 글을 보고

내 인생이 기적인지

투어인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인지

혹은 눈물을 흘리고 싶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찾아서 본 영화다.

 

정말 긴 영화였지만

다소 시적인 화면 영상과 모호하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대사들이

2시간이 넘는 영화였지만

지루하지 않게 집중해서 보게 된 영화다

 

 

 

 

소련의 감독 안드레아 타르콥스키.

영화만큼이나 스토리가 있는 감독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타르콥스키의 망명 

이 영화가 유작이며 칸영화제 6번 수상 감독.

이런 구글링 정보를 뒤로하고

시작되는 영화의 첫 장면이

철학, 종교, 미술을 전공했던

연극을 하기도 했던 은퇴한 교수 알렉산더는

아내와 둘이 여행으로 찾은 소나무가 옆에 있는

바닷가에서

늦둥이 고센을 낳고 살아가고 있다

영화는 다짜고짜

그의 패시미즘 적인 고백 같은

혼잣말로 

그의 생일날

 

 

 

 

친구들이 찾아오기 전

어떤 연유인지 실어증을 앓고 있는 아들 

고센을 데리고 독백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아들이 실어증 인지도

알려주지 않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아이가 말을 못 한 다는 것을

자연히 우체부 오토와의 대화에서

눈치챈다

자신이 아내와 여기에 오게 된 이야기며

죽음에 대한 공포

인류가 자연의 법칙을 무시해

인간과 자연으로부터의 고립

인류 문명이 권력과 공포 위에 세워졌고

모든 기술적 발전이

안락함을 제공하는 대신

파괴를 위한 도구이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공부한 것들이

자신을 옭아매는

지식의 사슬이었음을

자조하며

아들에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가

아들에게

 

 

 

 

죽은 나무를 심고

3년 동안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의 물을 주어

꽃을 피운 어떤 수도승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포함

꽤 길었지만

30년 전 찍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현세대와 물질문명의 발달이 주는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배운 지식인보다는

차라리 미개인들의 영혼이 맑을지 모른다라든지

 독백에 가까운 그런 말들이

심상치 않게 뇌리에 박히며 몰입해 듣게 되었던 것 같다

우체부 오토와의 대화에서는

문득..

 

 

 

 

 

영화 "일 포스티노"의

시인 네루다와 우체부 마리오의 서정적인

장면을 연상하게도 했다

대화는 다소 다를지언정..

이런 장면을 지나

알렉산더 집안에서의

축하 손님이자 이 집 안의 주치의 빅터와

알렉산더의 아내 애들레이드

그리고 딸 마르다

우체부 오토와의

대화로 또 긴 시간

 

 

 

영화라기보다는 연극무대 위에서 하는

연극 대사 같은 대화들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흥미 있는 것이

대화 속에서

알렉산더가 

연극배우 시절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라는

연극에 "미쉬킨" 역을 맡았었다는 것과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때만

순수해지는 자신에 회의를 느껴

연극을 그만둔 사실과

우체부 오토의

취미 아닌 취미

진실하지만

설명이 안 되는

수많은 사건을 수집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면서 한 

예화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다

 

예화의 내용은

어떤 미망인이 아들과 함께 살다가

아들이 입대할 18살의 나이에

입대 전 두 모자가

사진을 찍지만

아들은 입대 한 지 며칠 후 

전사를 하고

전쟁의 혼란 속에 그 사진 찾는 것도 잊은 채

다른 마을로 이사가 살다가

우연히 친구에게 줄 사진을 찍어서

찾았는데

그 사진 안에 자신의 늙은 모습과 함께

찍힌 18살 적의 아들 모습이 있었다는

실화이지만

설명할 수 없는...

왠지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사진 속에 나타날 수 있게 한 것인가?

처음 그 수도승의 이야기처럼

같은 시간 죽은 나무에 물을 

꾸준하게 간절히 준 것 같이

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꾸준하고 간절한 사랑이

죽은 나무에 꽃을 피운 것처럼

그 어머니의  마음을 알고

사진 속으로 나타난 것일까?

 

알 수 없는 기적 같은 것?

 

이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갑자기 텔레비전에서

군 장교의

3차 대전이 발발했음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혼란에 빠지고

그동안 신을 부정해 오던 알렉산더는

주기도문을 외운 후

진심 어린 기도와 서원을

아래와 같이 한다

 

 

 

 

오 주여

 이 암울한 시대에서 구하옵소서

내 애들과 친구들을 보호하소서

나의 아내와 빅터와

당신을 사랑하며 믿는 이들을

구하소서

당신을 보지 못하여

믿지 못하는 자들

아직 불행해 본 적이 없어

당신을 영접하지 못한 자들

미래의 생명력과 희망을 잃은 자들

당신 뜻에 

굴복할 기회를 잃은 사람들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

종말이 다가옴을 느끼는 자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걱정하는 이들

주님이 아니고서는

보호받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소서

이 전쟁은 마지막 전쟁이 될 것입니다

끔찍하게도

승자도 패자도

모두 사라질 것입니다

도시와 마을도

들풀과 나무도

우물물과 하늘의 새도

저의 모든 것을 바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도 포기하겠습니다

집도, 사랑하는 이들도 버리겠습니다

평생을 벙어리로 살겠습니다

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하겠습니다

어제, 혹은 오늘 아침과

똑같이 모든 것을 되돌려 주소서

그리고 저의 이 끔찍한 두려움을

없애 주시옵소서

내 모든 것을

오.. 주여 

도와주소서

약속한 모든 것을 지키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고 얼마 후

우체부 오토는 

알렉산더에게

이 전쟁을 멈출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것은 바로

건넛마을 농장에서

가정부로 일하러 오는

아이랜드에서 온

특별한 능력을 소유한 여인 "마리아"와 동침을

하는 일이라고...

 

알렉산더는 혼란을 느끼면서

우체부가 준비해놓은 사다리를 타고

우체부의 자전거로

마리아를 찾아가고

동침을 요구하기 전

어머니의 정원 이야기와

어렸을 적 여동생의 머리 자른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다

어머니를 위한다고

어머님의 자연미 넘치는 정원을

자신이 마음대로 고쳐 인위적인

정원으로 변한 것을 보고

폭력이 휩쓸고 간 장면처럼

끔찍했었다고 회고하는 장면

아버지가 동생의 아름다운

자연스러운 금발을 자른 후 눈물을 흘린 사건

을 이야기하며

마리아에게 동침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하자

권총으로 자살할 수도 있다고 위협하며

인류를 구원해 달라고

마리아가 누군지 다 안다며 설득을 한 후

동침을 한다

 

 

 

동침하는 장면도 특이한 것이

인간의 이기와 욕심이 가득한 현실을 이탈해

중력을 떨쳐내고

동침과 동시에 둥둥 떠오르는 장면이

말하는 그 무엇인가에 또한 

인류가

마리아와 알렉선더의 동침으로

구원되는 것인지?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잉태되어

죄 많은 인간의 죄로부터

구원하는 것을 연상하는지? 

특이한 기분이었던 것 같다..

 

 

 

 그 일 이후

아침이 밝아오고

정말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것을 확인한 알렉산더는

자기가 신에게 서원한 것을 지키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의미에서

집에 불을 지른다..

 

 

 

 

(실제로 이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의 고장으로 고스란히..

다시 한 번 그 장면을 찍었다고 하는 일화가

유명하다고 한다... 유난히 불타는 장면이

길게 시간이 지나가는데..

실제로 불붙어 타오르는 장면까지의

시간을 화면에 담았다고 한다)

 

바닷가로 산책하러 나간 식구들이

불길을 보고 집으로 달려오고

정신이상으로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생각하고

가족들과 주치의가 부른

정신병원 구급차..

이리저리 안 잡히려 도망치는 알렉산더...

그 사실을 말하려다

자신이 벙어리가 되어 침묵하겠다고

서원한 사실을 기억해 내고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우체부 오토에게만은

귓속말로 자신이 세상을 구원했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진실을 알지 못하게 되지만

우체부 오토에게는

또 다른 한 건의 진실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의 사건이 된 셈이다

 

 

영화가 매우 난해 한 영화다..

영혼으로 영화를 볼 수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 법한 영화다

꿈인 듯.. 현실인 듯..

알쏭달쏭 모호한 내용이지만

나름대로 눈물과 감동으로

본 이 영화를 통해 내 삶은 기적이 될까?

한낮 투어에 지나지 않는 삶이 내 삶이지 않을까?

기적 같은 삶은 어떤 삶일까?

"희생" 이 있는 삶..

 

그렇다

자발적인 희생이 있는 삶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무언가 자기 것을 "희생" 할 수 있는

삶을 실천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많아야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는 것일 것이다..

 

타르콥스키라는 영화감독을

이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다.. 무식하게.

그의 다른 영화들도 보고 싶어 졌다..

 

철학과

문학이 녹아 있는 영화..

 

 

영화 중에

 

시적 창작의 결과는

작가 자체와는 동떨어져 있어서

인간이 지은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다

 

배우의 경우는 정반대로

배우는 그 자신이 창조자며

예술품 그 자체다

라는 말에도

 

어떤 의미가 있는 듯 마음에 와 닿으며 드는 생각..

 

인간이 지은 것이라 믿어지지 않는 시를 

과연 쓸 수는 있을까?

 

왜..

이 영화를 보며

시인 네루다와 우체부 마리오를 떠올렸을까?

 

이 영화에 나오는 우체부 오토는

니체적 농담을 하며

불가사의한 사건을 모으는 수집가로

희생이 담기지 않은 선물을

선물이 아니라고 말할 정도의 

심오한 철학적인 대사를 한다..

 값없이 받은 선물

예수의 희생으로 받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암시하는 것도 같고...

 

알렉산더의

문명의 발전 속에서 느낀 

니체식 니힐리즘에서

그리스도의 희생을 

말하려는 그리스도적  영화인 것일까?

 

 

마음으론 정말 울림이 있는 영화인데

머릿속은 아직도 안갯속을 헤매는 듯..

모호한 기분은 왜일까?

 

 

참..

영화 끝에

실어증을 앓고 있던

알렉산더의 아들

고센이

양동이로 물을 길어다

아버지와 같이 심은

죽은 나무에 주고

누워

 

 

 

질문을 하며

입을 뗀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데...

무슨 뜻이죠 아빠?"

 

라고 하며 영화는 끝난다...

 

이것도 아버지의 희생의 씨앗인

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고센의 이 나무에 물을 주면

꽃이 필 수도 있다는 

믿음의 결실이었을까?

 

 

 

***

 

타르콥스키는

희생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를

 

세계가 물질적 진보는

반대로 정신적 황폐화를 느끼며

영화 " 희생"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고 싶었다며

"배부른 소비 돼지로서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던지

아니면 고귀한 정신적 책임감이 강한 

희생적 충만한 삶으로 회귀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다 " 라거나

"남을 위해 혹은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에게서 손톱만큼 느끼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중단한 사람이다"

라고 과감히 말한 타르콥스키의 말이

곱게 떠오르는 아침해의 하늘 위에

잔잔히 퍼져가고 있다..

 

아~~

색깔 고운 메밀차의 향이

코끝을 찡~하게 하는 아침이다..

 

2019년 1월 7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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