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 밤중에 에 한 일
-프시케-
얼마 전의 일이다
너무 잘 자라는 덕에
키가 훌쩍 커 지붕 위로 웃자란 포인세티아 나무를
옆지기가 하루를 잡아 다 잘라놓은 가지들.
어느 정도 마른 다음에 옮겨야
가볍다고 하는 바람에
며칠을 마르길 기다리고 있다
화요일이면 쓰레기 수거차가 오고
그날 자른 나무들도 거둬 간다.
한 주일을 거르고
볼 때마다 눈에 거슬려
수거하기 좋게 앞으로 갖다 놓아야 하는데
옆지기가 하겠다고 하기에
기다리고 있는 중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디저트까지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 배가 불러 더부룩한 중에
밤 11시가 넘어
마음도 싱숭생숭
뭔가 찌뿌둥한 몸을 움직이려
다올이 볼일도 시킬 겸 밖엘 나갔더니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쳤다 한다.
달도 없는 하늘.
칠흑 같은 밤에도
집 옆쪽으로 수북이 쌓인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와
눈에 거슬린다.
부른 배로 소화시킬 겸
내일이 나무 수거하기 좋게
조금씩 몇개만 옮겨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뭇가지를 질질 끌어 집 옆에서
잔디 앞쪽 거둬가기 좋은 장소로 옮겼다.
흠~~
몇개만 더 옮겨볼까?
그러기를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다울이는 덩달아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밖에 나와 있는 것을 즐기고 있다.
재킷을 걸치고 있던 터라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재킷을 벗으면
얇은 끈만 있는 원피스 차림으로
추적거리던 비가 멈추자
더 신이 나서 옮기기를 반복하다 보니
커다란 가지만 몇 개 남아있을 즈음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다리가 후들후들..
팔은 더 힘이 빠지고
왼팔 안쪽이 뾰족한 가지에 긁히는가 싶더니
왼 다리 바깥쪽 복숭아뼈 위에서
뭔가에 쓱~또 긁힌다.
이러다 혹시 누가 지나가다 보기라도 한다면
웬 여자가 팔뚝을 내놓고 저러고 있나
할 법한 차림새로....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뭘 시작하면
끝을 내야 하는 성격에
결국은 그 많은 잘라 놓은 나뭇가지를
다 옮기고서야
내가
한밤중에 생뚱맞은 일을 한 걸 알았다.
머리는 딴생각하고 한 일이라
그리 오래 걸린 것 같지는 않은데
온몸이 다 쑤시고 아프다.
숨은 헉헉 목까지 차오르고.
입엔 침이 말라 치약같이 굳어있고
한편으론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한 것 같아
시원하기도 하고
아침에 보고 놀랄
옆지기의 표정에 은근히
미소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 이런 엉뚱한 내 행동에
늘 토를 다는 옆지기가
나중에 한 말
"깜짝이야. 누구지?
"원더 워먼이 밤중에 다녀갔나?"
"아니면 우렁각시가?"
하면서 은근슬쩍
자신이 할 일을 대신해 준 것에
흐뭇해하는 눈치다..
옆지기도 그 많은 나무를
자르고 몸살이 났던 터라
그 많은 나무 옮기는 것도
걱정이 컸을 법하다..
다행히 그다음 날
그 많은 나무를 가져가 줘서
얼마다 속이 후련했던지.
한밤중에 희생한 것 치고는
두 군데 생긴 긁힌 상처와
온 팔다리가 아파
꿈쩍도 못 한 것 외에
그래도 기분은
홀가분했던
"내가 어느 한 밤중에 한일"의 자초지종이다.
*걱정이 있는 아침.
어수선한 마음을
단박에 날려버릴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오늘은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카모마일 차를 한잔 해야겠다..
.
2019년 1월 9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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