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작..
실패작 2
조금 나은 것
그중에 제일 나은 것..
빵이 익는가는 순간일지라도
-프시케-
아침부터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다
건희도 봄 방학이라
집에 와있고
사실 이번 주 개학해서 가야 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2주간 더 대학 기숙사를 닫는다고 한다
집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게
팥 호떡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이 레시피는 사실
시카고에 계신 블로거 친구분이
제게 주신 귀한 것이다
워낙 음식 솜씨가 없는 터라
몇 번의 실패를 각오하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자꾸 프라이팬에 붙는 게 아닌가
친구분이 조언하기를
버터밀크가 들어갔기 때문에
붙을 거라 하셨던 말이 생각났지만
속수무책이다
사실 이전에 건희와 나는
조그만 머핀 틀에다 넣고
빵을 구워 먹었다
그래서 붙을 염려가 없었는데
프라이팬에 하니
이렇게 붙는 단점이 있긴 했다
ㅎㅎㅎ
바쁘게 나가야 하니
빨리 익기를 기다리는 것이
조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3번째 부쳤을 때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급히 나와야 하기 때문에'
도합 4장만 만들어 보았다
문득..
붕어빵 틀 앞에 서라는 시가 생각났다
급하게 빵을 굽는 나는
빨리 익기만을 기다리며
동동거리는 마음을 안고 굽는 대신
이 시인은
얼마나 감성이 시인다운가
붕어빵을 굽는 붕어빵 틀 앞에서조차
시를 위한 시어들을
만들어내는
저 정도의 시심이 있어야 하건만
하루하루 바쁘게 움직이면서
문들 문득
나를 찾아와 말 거는
시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어서
나의 마음이
더 이상 허둥대지 않았으면
붕어빵 틀 앞에서 조차
시를 지어내는 시인의
그 순수함을 배우자
묵묵히 익기를 기다리며
말을 아끼고
가난한 사랑을 찬미하는
내 저 여린 또 다른
나를 깊숙한 저 내면에서
불러내 보자
빵이 익는 순간일지라도...
****
붕어빵 틀 앞에서
-?-
재촉하지 마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유월 밀밭 철럼 몸을 태우며
휘휘 자궁을 닦아내는 의식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을 무엇이겠는가
두 손 모으고 발 둥둥 구르는 일 말고
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눈보라 치는 이 겨울 속에서
꽃망울 터트리는 일월 동백처럼
뜨겁게 뜨겁게 삶의 불꽃을 방생하는
철녀 앞에서
우리 다만 조금 더 말을 아끼고
조금 더 마음이 가난해지는 사랑 아니면
그 무엇이 될 수 있겠는가
몸속 겨울 시린 강을 녹이려는 사람이여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
2020 년 3월 16일 월요일 아침
'가족 > 지난날의 추억'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청경채 겉절이 (0) | 2020.07.09 |
---|---|
무정부 주의자, 박애주의자, 평화 주의자-두부 부침 (0) | 2020.07.09 |
몸이 꿰매고 있는 상처 (0) | 2020.07.09 |
잠자는 공주(Sleeping Beauty) 꽃을 보셨나요? (0) | 2020.07.09 |
바람불어 좋은 날 (0) | 2020.07.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