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의소리/끄적여본글

풀뽑기와 호미질

by 프시케 psyche 2020. 8. 3.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1174849

 

 

[블로그 애비뉴] 호미 한자루가 불러온 모국에 대한 향수

한가로운 산책을 뒤로 미루고 허리 굽혀 뒷뜰 호미질에 나선 아침 시간이 뜻밖의 아련한 향수와 뿌듯한 기쁨을 선물했다.블로그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의 블로거 프시케 (필

www.koreadaily.com

 
한가로운 산책을 뒤로 미루고 허리 굽혀 뒷뜰 호미질에 나선 아침 시간이 뜻밖의 아련한 향수와 뿌듯한 기쁨을 선물했다.

 

 

블로그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의 블로거 프시케

 

(필명: 산정 조윤정 조지아 거주)

 


http://blog.koreadaily.com/psyche

듬성듬성 잔디 위에 솟아나오는 잡풀들이 봄을 알린다.

그간 전문 회사에 정원 관리를 맡기다가

이제는 잡풀도 손수 돌보고 싶다는 옆지기의 의견대로

작년부터는 잔디 관리 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았다.

올해도 봄이 찾아오니 쉴 새 없이 전화하며 재계약을 권유한다.

그것이 봄소식보다 더 빠르다.

아침 공기가 유난히 상큼한 이른 시간

산책을 하려 강아지 민희와 앞뜰에 나섰다.

유난히 파릇파릇 고개를 내민 잡초들이 눈에 들어오니

산책 대신 잡초를 솎아내고 싶어 진다.

다시 들어가 호미를 들고 나왔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사용할 일이 없었던 물건이다.

잡초를 뽑다보니 호미라는 물건이

정말 이 일에 아주 적당하게 만들어진 긴요한 물건이네 싶다.

도시에서 살았기에 호미를 쓸 일은 거의 없었던 나인데도

마치 오랫동안 사용해 온 물건처럼 손에 착 붙는 것이

풀 뽑기가 여간 수월한 것이 아니다.

어쩜! 하는 감탄이 입에서 절로 흘러나온다.

문득 돌아가신 박완서 선생님의

'호미 예찬'이라는 수필이 떠오르며 미소가 지어진다.

박완서 님이 글에서 예찬했던 그대로의 그 기분과 감정을

내가 지금 누릴 수 있다니!

선생님의 글을 빌자면 고개를 살짝 비튼 것 같은

그 수려한 선을 예찬하고

손아귀에 힘을 주면

그 힘이 오롯이 호미 끝으로 모여지는 것을 느끼며

호미를 만든 선조의 지혜를 깨닫게 된다.

예전에 조그만 모종삽을 사용해본 적이 있지만

호미만 하려면 어림도 없다.

익숙하진 않지만 잠시나마 호미질을 하며

앞마당의 잡초가 아닌 시골 어느 밭에서 호미질을 하는

시골 아낙 그 이마에서 훔쳐내는 땀방울이 내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

한국도 아닌 미국 땅까지 와서 뒤늦게 호미를 들고

잔디 위의 잡초를 뽑고 있는 내 지금이

흐뭇하면서도 한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든다.

산책 시간을 뒤로 물리고 잔디의 풀 뽑기를 하며

잠시나마 내 나라 시골 아낙의 김매는 수고를 생각할 수 있었던

한 나절이 잡초가 사라져

말끔해진 잔디를 바라보는 것보다 더 뿌듯하다.

 

 

[LA중앙일보] 발행 2011/03/28 미주판 30면 기사입력 2011/03/27 22:10

 

'마음의소리 > 끄적여본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정희 배우의 별세 소식과 바람과 햇살과 나  (0) 2023.01.25
사랑이란  (2) 2020.08.02
아름다운 사람 I  (0) 2020.08.02
일출  (0) 2020.08.02
눈물빛깔의 고독  (0) 202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