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의소리/오늘은 이런일이.....

희고 눈부신 숨결을 듣는것

by 프시케 psyche 2022. 11. 11.

아이들  어릴때 곰돌이 인형

 

 

외할머니께서는

첫째 영준이가 태어났을 때

작은 포대기를 선물로 미국으로 보내셨다

보라색 짧은 누비포대기였다

그 포대기로 첫째 영준이는 물론

둘째 건희까지 업어 키운 포대기라

늘 소중하게 여긴다

업어준다는 것..

아래 박서영 시인의 시에서 처럼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이다

버지니아에 살던 시누이 식구들이

이쪽 조지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집을 찾는 동안 우리 집에서 몇 개월을 같이 살았다

그때 시누이에게는 티파니라는 큰딸이 있었다

둘째를 가지고 있던 시누이 대신

내가 매일 틈이 날 때마다 티파니를 업어주었다

아마도 등에 업혔던 적이 없어서였는지

어린 티파니는 내 등에 업히는 순간 긴 안도의 숨을 쉬곤 했다

" 하~아"

등에 얼굴을 대고 그 소리를 낼 때면

나는 기분 좋아지곤 했다

누군가의 희고 눈부신 숨결이었다

비록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들지는 않았어도

그 업힌 어린 숨결은 내게 작고 예쁜 사랑을 

그 안도의 숨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지는 않았어도

티파니를 업었던 수많은 날의 기억이

지금도 내 기억 속에

작은 미소 되어 남아있다

그런데 그 안도의 숨소리를 

키우는 반려견 다올 이에게 서 요즘 듣는다

다올이는 내가 저녁 늦게 컴퓨터에 앉아 있으면

잠잘 시간이라고 나를 데리러 온다

빨리 자자고 조르면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들어가서 잠자리에 드는데

다올이는 우리 침대 위 발치에서

제 이불을 깔고 같이 잠을 잔다

자리에 누워 손으로 귀를 쓰다듬는 순가

다올이 의 안도의 한숨이

티파니를 업었을 때 들었던 그 기분을 느끼게 한다

아이가 어릴 때 업고 자장가를 흥얼거리던 때..

두 손이 자유롭기 위해 등에 업고 집안일을 했던 때..

누군가에게 등을 내어주는 일이

이렇게 서로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그의 안도를 등에 업고 포대기로 감싸 안는 것...

아이들을 등에 업어주던

그 오랜 추억과 기억이

유머러스하시던 사랑을 내게 그렇게도 많이 주시던

외할머니의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과 오버랩된다

 

* 오늘은 박서영의 "업어준다는 것"의 시를 읽으며

   끄적여 봅니다

 

 

 

 

 

업어준다는 것

 

박 서영

 

 

저수지에 빠졌던 검은 염소를 업고

노파가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등이 흠뻑 젖어들고 있다

가끔 고개를 돌려 염소와 눈을 맞추며

자장가까지 흥얼거렸다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희고 눈부신 그의 숨결을 듣는다는 것

그의 감춰진 울음이 몸에 스며든다는 것

서로를 찌르지 않고 받아준다는 것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에

등줄기가 청진기처럼 닿는다는 것

 

누군가를 업어준다는 것은

약국의 흐릿한 창문을 닦듯

서로의 눈동자 속에 낀 슬픔을 닦아주는 일

흩어진 영혼을 자루에 담아주는 일

 

사람이 짐승을 업고 긴 방죽을 걸어가고 있다

한없이 가벼워진 몸이

젖어 더욱 무거워진 몸을 업어주고 있다

울음이 불룩한 무덤에 스며드는 것 같다

 

 

2022년 11월 11일 금요일

 

 

 

'마음의소리 > 오늘은 이런일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박죽 단상  (6) 2022.11.18
바람 호수가 나를 맞듯..  (0) 2022.11.12
내 머문 세상 이토록 찬란한것을  (4) 2022.11.11
뉘우침으로 얼굴 붉어진 ...  (3) 2022.11.08
초록을 입은 다올  (2) 2022.11.08